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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 • 한글날 제정 57 한글의 제자원리와 사용법을 해설한 책인『훈민정 음』의 서문에 나온 “28자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 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 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은 가장 과학적 이면서 가장 실용적인 한글의 특성을 정확히 짚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글을 찬양하는 사람의 평 가와 한글을 반대했던 이들의 평가가 근본적으로 다 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언문을 시행하오 면 관리된 자가 오로지 언문만을 습득하고 학문하는 문자를 돌보지 않아서 관리들이 둘로 나뉠 것”이라 는 최만리(崔萬理)의 우려는 역설적으로 쉽고 편리 한 한글의 장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자였기에 근대의 문을 여는 시점에 한글 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문 글쓰기를 폐지하는 개혁 과정에서 한글의 우수성 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한글을 국문으로 삼는 것 에 반대하는 논리에 반박하며, “국문이란 것은 조선 글이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것이라, 한문보다 백 배 가 낫고 편리한즉 내 나라에 좋은 게 있으면 그것을 쓰는 것이 옳다”는 내용의 『독립신문』(1896.6.4)의 사설은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것이 곧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고 그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글을 국문으로 삼는 것이 근대 개혁의 상징적 조치가 되면서, 한글은 근대적 정체성을 확 립하는 데 구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글처럼 우수한 문자를 만든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한글 과 우리말을 부흥시키고, 이를 통해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이끌겠다는 논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이러 한 상황에서 주시경(周時經)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은 한글 창제일 기념식을 계획했다. 그 당시 만든 것으 로 추정되는 「우리글 창제 기념가」에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고리로 국민정신을 고양하고자 했던 선각 자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2절: 거룩하고 밝은 우리 선왕조 세종 / 말에 맞은 『조선말 큰 사전』 원고(보물 제2086호, 독립기념관 제공) 가갸날 기념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6년 11월 6일자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