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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본 일제의 의병 탄압 57 지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사진 상단 오른쪽 에 “全南暴徒 大首魁 全海山”이란 글씨가 세로 3줄로 적혀있다. 흥미롭게도 독립기념관에는 같은 장소에 서 전해산이 서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사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종이판넬 뒷면에는 ‘전해산’이란 이 름을 한자로 적어 다른 사진들과 구분하고 있다. 두 번째 사진 자료는 심남일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던 강무경이다. 일제는 강무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글을 붙였다. “심남일의 심복[股肱] 장수로서 전라남도 능주(綾 州) · 장흥(長興) · 보성(寶城) 부근을 근거로 부하 약 200명 내지 500명을 거느리고 횡행하였다. 메이지 42년(1909) 10월 9일 임시한국파견 보병 제2연대 제3중대에게 전라남도 풍치(風峙 : 월정장(月亭場) 북 방 약 2리) 바위굴에서 잠복 중 체포되었다.” 강무경은 심남일과 함께 일제에게 체포되었는데, 심남일 사진 자료에서도 그 점을 기록하고 있다. 강 무경이 혼자 서 있는 모습을 찍은 이 사진은 독 립기 념관에 사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세 번째 사진 자료는 역시 한말 의병장으로 유명 한 심남일이다. 일제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 명한 글을 붙였다. “부하 200명 내지 700명을 가지고 전라남도 영산 강 이남의 지역을 횡행하며 폭도 수괴 중 거벽이었 다. 메이지 42년(1909) 10월 9일 부장(部長) 강무경 과 함께 임시한국파견 보병 제2연대 제3중대에게 전 라남도 풍치(月亭場 북방 약 2리) 바위굴에서 잠복 중 체포되었다.” 혼자 서 있는 심남일의 사진은 그 사본이 강무경 과 마찬가지로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궁내청 에 소장된 세 명의 사진 중 전해산의 사진만 다르고 나머지 두 사람의 사진은 궁내청 소장본의 사본이 다. 호남의병에서 전해산 · 심남일 · 강무경 등이 차지 하는 위상은 적지 않다. 세 사람에 대한 단독 사진을 사진 ➌ 『韓国 全羅南道での写真 』 ‘심남일’의 앞면과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