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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초 실 향 민 의 정 치 의 식 과 성 향 57 는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1960, 1970년대는 북한 규탄 궐기대 회의 시대였다. 당시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접경지역에 남북간 분쟁이 빈발했다. 1975년 7월 15일 이산가족 성묘실현을 위한 속초시민 궐기대회가 2천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속초이북5 도민회 주최로 열렸다. 당시 대회를 보도한 다음날 조선일보에 는 “1천만 이산가족의 염원인 혈육의 재결합을 정치문제를 내 세워 방해하는 김일성의 만행을 규탄하고 하루속히 헤어진 부 모형제가 만날 수 있도록 하자”고 대회의 취지를 보도했다. 궐 기대회 소식 바로 밑에 “북괴, 사실상 거부”라는 제목으로 “북 괴는 이산가족 성묘실현을 위한 한국의 이북 5도민회의 호소를 사실상 거부했다”며, “북한적십자는 한국정부 지도자들이 적십 자회담을 완전 파국으로 몰고 갈 불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남북간 대화의 물고가 트인 1990년대에도 언론의 동원성 기 사에 속초의 실향민들이 계속 거론되었다. 1994년 6월 30일자 경향신문은 남북간 정상회담 예정 소식에 “속초 실향민들이 고 향 흙 밟아볼지 부푼 기대를 한다”고 보도했는데, 한 달도 안 되 어 터진 김일성 사망 소식에 서울신문은 “실향민마을 분단원흉 사라졌다며 막걸리 파티”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는 “만세 부 르며 실향의 한 풀어, 속초 아바이마을서 보는 김일성 사망”이 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시했다. 이렇듯 속초의 실향민은 남북관 계의 격랑에 휩쓸려 이리저리 치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