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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을규(李乙奎) 선생 생가지(生家址)
이을규(1894.2.21.~1972.6.11.) 선생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 217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3.1독립운동 직후 전협.최익환 등이 전 조신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결성한 대동단에 가입하여 1919년 10월 대동단의 본부를 상해로 이전하기로 계획하고, 그해 10월 10일 동단의 총재 김가진을 1차로 망명시킨 뒤 의친왕(懿親王)의 상해망명을 추진하였다. 당시 대동단은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회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하는 한편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선전활동을 폈으며, 강태동과 함께 상해에서 귀국한 그는 의친왕의 망명을 추진하는 한편 상해임시정부로부터 송달된 〈적의 관리인 동포에게〉,〈남녀학생에게〉 등의 각종 선전물 3천5백매를 배포하면서 적극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정남용과 함께 의친왕(懿親王)을 상해까지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는 준비가 완료됨에 따라 그해 11월 9일 서울을 출발하였으나, 도중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의 추격을 받아 이들 일행은 11월 11일 만주 안동역에서 피검되었는데, 이 때 그는 일제의 포위망을 뚫고 검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20년 1월 재입국했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그는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다시 상해로 건너가 무력투쟁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무기제조 및 무장훈련에 힘을 쏟았다. 그후 만주로 넘어간 그는 1929년 7월 김좌진 등이 주도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에 참여면서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 계열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년 8월 일 계룡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