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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6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계 민족대표들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 고 대한독립만세를 3창함으로써 3·1운동의 불꽃을 지폈다. 이로 인해 그를 비롯한 민족대표들은 출동 한 조선총독부 경찰에 잡혀 경무총감부로 압 송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때 일본인 판사가 독립선언서를 보이며 이 취지에 찬성하는가 하고 묻자 “그렇다”고 떳떳하게 대답하였다. 또 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는가 하고 묻자 “조선이 독립하는 것이 마음으로 좋아서 찬 성하였다”고 하였다. 결국 1920년 10월 30 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 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불경의 한글화 작업과 ‘선농(禪農)일치운 동’ 전개 수감 중에도 불교의 대중화 실현, 그를 통 해 중생구제와 민족 독립의 역량을 축적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불경의 한글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1921년 3월 출 옥 후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 본격 적으로 불경의 한글화 작업과 불교 대중화를 위한 각종 포교서의 저술에 착수하였다. 한편, 당시 식민지 ‘조선’ 사원(寺院)경제 의 난맥상을 청산하고, 나아가 일제하 우리 민족과 불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기 위해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불교운동을 본격 적으로 전개하였다. 대각교를 표방하면서 불 교개혁, 민족불교 지향에 매진하였다. 한글 위주, 수행 위주, 선농불교(禪農佛敎) 실천, 신도 배려 등 이었다. 『대각교 의식』과 『오도의 진리』의 발간, 1929년 경남 함양군의 화과원(華果院)에서의 과수원 경영, 중국 연변(延邊, 북간도)의 2개 처에서 경영한 농장은 그 예이다. 화과원은 수행을 하면서, 집필도 하고 후학을 가르치 던 곳이었다. 그리고 연변의 용정(龍井)에는 대각교당(대각사 선동당[禪農堂])을 세웠는 데, 이곳은 조선을 떠난 이주민들의 정신적 터전이 되었다. 용정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월촌과 봉녕촌 농장은 수십만여 평 에 달하는 면적이었다. 화과원과 용정 농장 은 일하면서 수행을 하는 선농불교의 도량이 「일제감시대상인물 카드」에 실린 백용성의 서대문형무소 수감시 사진 백용성(백상규) 재판 판결문(왼쪽, 국가기록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