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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5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를 받았다. 1918년 6월 웰치(H.Welch) 감독이 주재하는 제 11회 북감리회 연회에서 휴직·사임하고 민족운동에 뛰어든 손정도(孫貞道) 목사 후임으로 정동교회를 담임하였다. 정동교회에서 목회하던 중인 1919년 2월 25일 해주의 최성모(崔聖模) 목사가 자기 아들의 배재학교 졸업식을 보 고 상급학교 진학을 상의하려고 찾아왔다. 최성모는 이날 박희도(朴熙道)를 만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즉시 찬성하 고, 거처에 돌아와 그 소식을 전하였다. 이필주는 이에 즉시 찬성하고, 다음 날인 2월 26일 최성모와 함께 박희도를 찾 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박희도는 2월 27일 오후 2 시 한강 인도교 부근에서 열릴 예정인 기독교계의 준비 모 임에 두 사람도 참석하도록 초대하였다. 2월 27일 정오 박희도·김창준·함태영·이갑성·이승훈·신 석구·오화영·최성모·박동완 등이 모인 기독교계 예비모임 장소로 자택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이 모임에서 독립선언 서를 배포할 지역 책임자를 선정하고, 16명의 기독교계 민 족대표 명단을 확정하였다. 오후 2시경 한강 인도교 부근 모임에 이승훈·박희도·오화영·이갑 성·최성모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2월 28일 밤 손병희(孫秉熙)의 집에서 모인 마지막 전체 회 합에 참여하고 집에 돌아와 가족 예배를 드리면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만세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마침내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곧 바로 일제 경 이필주가 담임목사로 복무한 정동교회이필주의 예심종결 결정문 (경성복심법원, 1920.3.22, 국가보훈부 제공)  이필주의 감옥 수감시 수형기록 카드 (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