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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3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하였다. “오늘의 민정을 살펴보면 매우 가련 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령 4칸의 초가집은 1 년의 납세가 백여 금이고, 5~6두락(斗落)의 토지에는 1년 납세액이 너무 많아 호구조차 잇지 못할 정도로 빈궁이 극심합니다. 만약 대경장을 크게 시행하지 않으면 실효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국의 병력을 끌어들이자는 소위 ‘차병 (借兵)’ 논의에 대해 “병력으로 이를 제압하여 도 그 근원을 다스리지 못한즉 국민들 모두 가 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였다. 그 를 비롯한 정범조(鄭範朝) 등 개혁파 인사들 은 청렴한 인사 등용, 탐관오리 징계 등을 농 민운동의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반일 · 점진개혁의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마침내 외세의 개입없이 독자적으로 내정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농민운동 수습책과 정부기구 혁신을 통해 일본의 압박 을 막을 목적으로 교정청(校正廳)을 신설하였 다. 그는 이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 을 등에 업은 소장개혁파들이 갑오개혁을 추 진하자 정계 1선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폐정개혁을 위한 시무 19개조 건의 1894년 갑오개혁과 이듬해 을미사변을 거 치면서 일본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고 일 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조병세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896년 19개조의 차자(箚子, 상소 의 일종)를 올려 폐정개혁을 건의했다. 그 내 용은 언로(言路)를 크게 열어 중책(衆策)을 모 을 것, 현명한 인재를 널리 구할 것, 재정을 충실히 한 연후에 군대를 양성할 것, 각지의 의병을 효유하되 토벌하지 말 것 등으로 특 히 난국을 헤쳐갈 인재의 등용과 재정 안정 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러시아공사관으로 이거한 고종(아관파천)에게 러시아와의 교섭 에 신중할 것을 청원하여 정치외교의 자주성 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국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자주적 외교노선과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지 못하였 고, 일본과 러시아에 각종 이권을 내어주는 등 혼미를 거듭하였다. 급기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강압으로 1904년 한일협정이 강제 체결되어 일제가 추천하는 재정 · 외교 고문관이 한국 재무 · 외무관계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또 이듬해 2월에는 재외국 공사들이 소환되어 대한제국의 외교활동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79세의 노 구를 이끌고 다음과 같은 시폐 5조(時弊 5條) 의 상소를 올려 광무황제(고종)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간곡히 아뢰었다. ❶ 재상을 신중히 선택하여 정강(政綱)을 세울 것. ❷ 제 주변의 간신배를 숙청하여 아첨을 막을 것. ❸ 간관(諫官)을 두어 언로를 넓힐 것. ❹ 외부대신을 잘 가려 임명하여 대외교 섭에 신중을 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