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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온 민속명절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날은 연등행사(燃燈行 事)와 (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갖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중국에서도 이날 연등행사가 이루어지나 우리나라처럼 성행하지는 않으며, 일본에서는 연등축제 대신 불전(佛前)에 꽃 을 올리는 ‘하나마쯔리’로 대신하고 있다. 연등행사 또는 연등축제로 펼쳐지는 불교의 명절인 초파일이 민속명절로 전승된 것은 재래로 전승되어 온 연등행사와 불교의 연등공양(燃燈供養)이 습합(習合)된 데 연유한다. 불교적 성격을 띤 국가 행사인 (燃燈會)는 551년(진흥왕 12)에 (八關會)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 행사로 열리게 되었고 특히 고려 때 성행하였다. 이는 불교문화권에서 성행하던 불교의례의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불전에 등(燈)을 밝히는 등공양(燈供養)이 차공양(茶供 養), 과공양(果供養), 미공양(米供養) 등과 더불어 중요시되었다. 그것은 불전에 등을 밝 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 한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제를 받으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경전인 『법화경(法華經)』의 약왕보살(藥王菩薩本事品)에서는 등공양의 공덕이 무량 하다고 지적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의 감통편(感通篇)에도 불등(佛燈)에 관한 설화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등불을 밝히는 참된 의미에 대해 말한 것이다. 등을 밝히는 것이 곧 연등이고,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간등(看燈) 또는(觀燈)이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는 관등행사가 매년 정월 15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 다. 이는 연례적으로 이 행사가 행해졌고, 4월 8일의 연등행사 이외에도 민속적으로 전 승되어 온 연등행사가 있었음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속적 연등행사와 불교적 연등행사가 습합되어 오늘의 4월 8일, 곧 초파일의 연등축제로 이어진 것이다. 관등 고려시대에는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따라서 연등회를 거국적인 행사로 성대하게 시행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정월 15일에 연등이 있었으며, 이것이 987년(성종 6) 10월에 정회(停會)되었다가 현종 때 2월 15일에 다시 시행하였으며, 그 뒤에는 고려 멸망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행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 빈번히 나타난다. 현종 이후 의 연등설회(燃燈設會)에 관한 기록은 104번이나 되지만, 2월 연등회로 정하였던 연등회 가 반드시 그 날짜를 지켜서 거행되지는 않았다. 1105년(숙종 10)에는 정월에 연등을 행하였고, 의종 때도 정월에 20여 회가 열렸다. 그리고 1105년의 연등에 대하여 『고려사』에는 다른 연등 기사와는 달리 천지신명(天地神 明)을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태조의 정신을 의식적으로 추종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