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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실 향 민 의 삶 과가 나왔다. 특히 당시 동별 득표율을 보면, 속초시내권(영랑 동, 동명동, 중앙동, 청학동, 교동, 청호동)은 김대중후보가 우 세했다. 박정희 후보는 농촌지역(노학동, 조양동, 청호동, 대포 동, 도문동, 설악동)에서 몰표가 쏟아져 나왔다. 실향민이 많은 아바이마을 청호동에서도 박정희는 1,096표, 김대중은 1,353 표가 나왔다. 이러한 득표로 속초는 강원도에서 박정희 후보 득표율이 가장 낮고, 김대중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실향민이 다수를 이루고, 특히 군 출신이 사회지도층을 이루 며 반공보수성향으로 불리던 속초로서는 예상치 못한 투표결과 였다. 더구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는 남북의 갈 등과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러 이데올로기적 압박이 아주 강하 던 때였다. 그러나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어장상실, 남북의 갈등에 따른 어로한계선의 남하로 동해안 명태 황금어장의 상실 등으로 속 초의 어민들은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피랍어부에 대한 강 압적인 정권의 압박도 부정적인 여론에 일조했다. 1956년 집 권여당 후보에 대한 99.8%의 지지를 보낸 지역에서 15년만에 완전히 다른 정치성향을 보여준 것이다. 이 대통령선거에서는 남북의 이념적 대립보다 당장 먹고사는 경제문제가 더 중요하 게 부각된 것이다. 실향민과 냉전 이데올로기 재생산 속초 실향민의 삶은 남북 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