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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기서는 이 벽화묘의 축조수법과 벽화내용을 중심으로 그 특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축조수법이다. 이 묘의 축조수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隨造를 갖춘 方形幕라고 할 수 있다 방형묘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까지 이곳에서 일정계층에서 유행한 묘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송은선생의 묘가 방형묘인 것은 예외적이라 고 할 수 없다. 다만 유구의 축조과정에서 남쪽으로 隊道를 설치한 것과 전기한 것과 같이 병풍석이 경사지게 설치된 것은 특이한 경우이다. 특히 수도는 횡구식 석실의 基 道와 같은 용도의 것으로 판단되는데 발굴과정에서 이렇게 완벽한 것을 확인한 것은 이것이 처음 있는 예이다 조선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횡구식 석실묘는 김해덕산리 유 적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으나.8) 조사당시 수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수도는 養進와 構의 역할을 겸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원류가 삼국시대 횡구 · 횡혈식석실의 묘도나 연도와 유관한 것인지는 장차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봉분 주위에 편평석으로 깔려진 敵石層, 봉분내부의 양질 版集土層 등은 심혈을 기울여 이 묘를 축조하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이다. 다음은 벽화내용이다. 고려시대의 벽화묘는 太祖 王建|婆9)을 비롯해서 明宗 智陸, 뽕 感王陸10), 開豊 水落岩洞11), 長端那 法堂행12), 鐵原那 內門里, 居昌那 면馬里13), 安東 西三洞14), :l;皮州 瑞삼里 뿔畵幕15)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것은 이번에 조사된 송은선생 묘의 벽화가 유일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송은선생은 고려시대에 관 직생활을 하다가 조선초기에 돌아가신 麗末蘇初의 과도기적인 시기에 활동하신 분이 다. 따라서 묘의 축조수법도 마찬가지이지만 벽화내용에 있어서도 ;과도기적인 성격이 농후할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전기한 고려시대 벽화묘의 내용이 十二支피I해象圖나 星宿 圖가 대부분이고 奏樂삐|女圖와 같은 풍속도는 드문 형편이어서 인풀풍속도와 매죽도 가 중심인 고법리 벽화묘와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8) 심봉근, r金海 德山里 民흉휠ßJ , 束亞大學敎빡物짧 古趙해효휘i告二十三떼, 1995 9) 김영심, 「고려태조 왕건왕릉벽화에 대하여J r조선예술J , 1993, 11 10) 조선유적유물도감면찬위원회, r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J IV,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11) 金元龍, r뿔畵」 햄國美術全集4, 同和出版公社, 1974 12) 李弘植, 「高麗뿔畵古慣發펌記-長端那 律西面 法堂야-J r隊國文化論댔J , ζi펌x1b1d:, 1954 13) 文化財管理局, r居昌 면馬里 탤畵古觸 및 rJ(혐~훌發抱점해3호報告J , 1974 14) 任世↑짧 r安東西三洞뿔畵古慣J , 安東大學뱀物館論뽑1, 1981 15) 文化財管理局 文1r.財m:究所, rt페|‘| 瑞용里 高麗뿔畵훌J , 1993 • 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