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page


56page

항일투사 농고 오하근 기념비 공은 1897년 10월 15일, 영주군 이산면 조암리에서 태어 나셨으며, 천품이 성실하고 강직하여, 나라가 국치를 당한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일제 혹정에 대한 불만과 저항심은 무언중 내심에 충만해 가고 있을 때, 1919년 3.1독립운동이 삼천리 전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천지를 진감하는 그 당시 공은 23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서 열화와 같은 항일구국의 의분과 골수에 사모치던 국가 잃은 서러움이 일시에 폭발하여, 영주와 봉화지역까지 활동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영주장날에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광분하는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6개월 형을 받고 영어의 생활을 하셨으며, 출옥하신 후 공은 본고장 출신으로서 끊임없는 광복운동과 아울러 귀향하여 후진양성에 기여하였다. 공은 1963년 6월 25일 영주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