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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농선생 영천최공 신도비
예술원 회장 문학박사 박종화 짓고, 서울시 문화위원회 위원 김충현 쓰다.
나라를 사랑하는이 많다하나 백농 최규동선생처럼 겨레를 근심하고 사랑한분이 몇이나되는가? 선생은 약관시절에 나라의 운수가 글러짐을 보시고 이 겨레의 운명을 바로잡고 이 나라의 광복을 꾀하는 길은 오직 영특한 인재를 기르는데 있다 생각하시고 서리발같은 일인총칼속에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 교편을 잡고 밥을 굶으시며 중동학교를 창립하시니 수천의 영재 비로소 이땅에 배출하였다. 선생은 한결같이 평생을 교육사업에 바치시는중 하늘운수가 다시 돌아와 대한민국정부가 서자 교육계의 원로로 중망에의하여 국립서울대학교 초대총장에 취임하시었으니 선생의 거룩한 인격과 온후한 덕망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이땅에 경인 6.25사변이 일어나자 선생은 괴로군에 납치되어 노령에 꾿꾿이 자유를 지켜 평양감옥에 옥사하시니 슬프도다. 선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자로 나라에 순직하여 세상을 떠난것이다. 그해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은 평양을 탈환하여 압록강까지 치밀때 삼남 성악은 서랑 방성회와 같이 트럭으로 아버지의 종적을 찾으러 평양으로 달리어 결국 살아 계신 아버지를 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