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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이상재 선생은 경술 10월 26일 관향인 충청남도 한산에서 태어나시어 78세의 보수를 누리시다가 정묘 3월 29일 서울 재동 우거에서 세상을 떠나시었다. 그 긴 생애를 통하여 나라의 벼슬도 지내시긴 하였으나 끝끝내 소박한 야인의 태도와 기백으로 내치시어 사르신 바 그것은 오로지 선생의 고결한 품성의 소치인 것이다. 국운이 불리하여 을사보호조약의 뒤를 따르는 일본의 학정이 자심할 적에 선생은 마침내 영오에 구속되는 모욕을 당하시고 번연히 깨다르신 바 있어 기독교를 신앙하시고 반생을 청년훈육에 바치시었다. 그중 특히할 것은 삼일운동의 방법을 지정하신 것이다. 그때 천도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과 함께 모의를 거듭하실새 다수인은 한결같이 살육을 주장하였으나 오직 선생이 남을 살육하느니보다 우리가 죽기로 항거하여 대의를 세움만 같지 못하다고 제의하시었다. 그리하여 무저항 비폭력의 혁명운동이 처음으로 전개되어 인류역사상에 우리가 영광스러운 사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원하시던 것은 잔악한 일정의 쇠사슬을 벗어나서 조국의 빛나는 회복을 하로바삐 보시렵이었다. 선생께서는 우슴 가운데 눈물을 감추시었고 봄바람같이 부드러우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