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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동 학살지 여순사건이 진압되자 여수 읍민은 서국민학교(현 서초등학교) 운동장 등 도심지의 넓은 공공장소에 끌려와 수용되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에 풀려났다. 그러나 진압군은 40세 미만의 주민을 부역혐의자로 간주하고 젊은 남자 600여 명을 따로 색출하여 오동도와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로 끌고 갔다.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된 사람은 적극 가담자라는 이유로 여러 곳에서 학살되었다. 진압군은 1948년 11월 3일 구봉산 아래 공동묘지였던 이곳으로 부역혐의자 30여 명을 트럭으로 싣고 와서 학살하고 암매장하였다. 훗날 이곳에 여수보육원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