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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본 일제의 의병 탄압 55 일본 궁내청(일제강점기 궁내성) 서 릉부(書陵部) 궁내공문서관에 『한 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이란 이 색적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이 사진 들은 아픈 우리 역사의 단면을 생생 하게 알려준다. 여기 수록된 5장의  사진은 전해산, 강무경, 심남일 의 병장의 단독 사진과 전라남도 관찰 사 신응희가 체포된 의병들 앞에서  훈계하는 광경 사진, 강무경 · 심남일  등 5명이 함께 찍은 것이다. 심남일 과 강무경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능주군 풍치 바위굴에서 잠복해 있 다가, 임시한국파견 보병 제2연대  제3중대에게 1909년 10월 9일 체 포되고 말았다. 이 자료를 통해 강무 경 아내 양방매와 심남일의 첩 등 의 병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얼굴과 활 동의 일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는 의병운동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 긴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을 물심양 면 도와주고 희생한 이름 모를 사람 들이 존재했음을 되새기게 해준다.  이 자료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와 정 보를 찾아내고, 자료를 조사 수집하 며 지속적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일본 궁내청과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韓国 全羅南道での写真)』 일본 궁내청(宮內廳, 일제강점기 궁내성[宮內省]) 서릉부(書陵部) 궁 내공문서관에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韓国 全羅南道での写真)』 이라는 상당히 이색적인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일본의 황실문고인 궁 내청 서릉부는 예전부터 한국에는 없는 귀중 사료가 소장되었을 것으 로 여겨졌으며, 일제강점기에 궁내성 촉탁으로 근무했던 박창화(朴昌 和)의 『화랑세기』 필사본으로 인해 더욱 한국학계에 이런 기대 어린 의 구심을 증폭시켰다. 원래 궁내청 궁내공문서관은 메이지(明治)시기 이 후 궁내성 · 궁내부 · 궁내청이 작성하거나 또는 소속기관이나 외부로부 터 오는 문서 등을 취득하여 궁내청 궁내공문서관으로 이관된 특정 역 사공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 대한제국의 황실을 이왕가(李王家)로, 황실구성원을 일본의 황족에 버금가는 왕공족(王公族)이란 신분으로 만들고, 이왕가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이왕직(李王職)을 신설하였다. 그 리고 당시 일본 궁내성은 이왕직을 소속 기관으로 삼되 실질적인 관리 를 조선총독부에 맡겼다. 이런 연유로 이왕직 · 이왕가에 관한 많은 자료 들이 일제강점기 궁내성으로 들어왔고 그 자료들이 현재 궁내청 공문 서관으로 이어졌다. 그밖에 한국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근대사 에 관련된 희귀한 자료들이 궁내공문서관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이 글 에서 소개할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韓 国 全羅南道での写真)』도 그런 자료들 중에 하나로 아픈 우리 역사의 단면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의 구성과 내용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은 1909년에 작성된 것으로, 앨범 형 식의 종이판넬에 사진을 각 1장씩 붙인 후, 각각 사진 앞에 그것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는 글이 기록된 종이를 붙였다. 자료에 포함된 총 5장 의 사진을 간략히 구분한다면, 전해산(全海山, 1879~1910), 강무경(姜 武京, 1878~1910), 심남일(沈南一, 1871~1910)의 단독 사진과 전라남 도 관찰사 신응희(申應熙, 1859~1928)가 체포된 의병들 앞에서 훈계하 는 광경 사진, 강무경 · 심남일 등 5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첫 번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