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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 그리고 백조 청년의 열정 ≪백조≫ 동인으로 탄생하다. 1921년 방황과 번민의 청년이었던 이상화는 어느 날 소설가 현진건의 서울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박영희, 나도향, 홍사용, 박종화 등 시대의 문인들을 만난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낭만주의 문학의 정점이었던 ≪백조≫동인의 시작은 곧 이상화 문학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흔히 동인지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꼭지점에 ≪백조≫가 있었으며 그 푯대 끝에 깃발처럼 청년 시인 이상화가 나부끼고 있었다. ≪백조≫ 문학의 핵심은 청년의 여렁과 시대 감각이었다. 청년의 감각, 이것이야말로 당대 문학의 핵심이었으며, 나아가 초기 한국 근대문학의 내적 동력이었다. 청년 이상화의 문학적 실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 사조의 선구적 수용과 빼앗긴 시대에 대한 청년의 갈증이 문학적 형상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 언어와 문학 이전에 나라 잃은 삶이 있었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과 호흡을 지닌 대구 청년이 있었다. 식민지 시대를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식민지를 넘어서는 상상력과 감각, 그리고 청년으로서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식미지 시대가 청년에게 던져준 과제였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일은 야만이다.'는 아도르노의 위대한 절규는 다시 말해 아우슈비츠를 넘어서는 시를 의미한다. 청년 이상화에게도 식민지는 넘어서야 할 과제였다. 그것은 곧 청년의 열정과 상상력으로 식민지를 균열시키고 넘어서는 또 하나의 저항이었다. 글. 박승희(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