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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에는 평택지역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날 저녁 평택역 광장(원평동)에는 약 3천여 명이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인근 부용면과 서면(팽성읍), 고덕면, 송탄면, 청북면에서도 각 지역의 산 정상에서 횃불시위를 전개한 뒤 평택역 앞으로 집결하려고 했다. 특히 부용면과 서면지역(팽성읍)의 시위대는 평택역으로 이동하던 중 평택교(현 군문교) 입구에서 일본 경찰에 막히자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불렀다.
평택역 앞과 북면(진위면) 봉남리를 중심으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각 지역이 연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진위경찰서는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날 만세운동은 밤 12시경에야 잠잠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4명이 희생되었으며, 부상자가 10여명에 달했다. 경찰은 민간인의 야간 출입을 금지시켰고, 일본인 상점 주인들은 다음날부터 문을 열지 못했다.
4월 1일 고덕면에서는 율포리 주민 5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오성면과 청북면에서도 안육만과 김원근이 백봉산에 올라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에 최만화, 안희문, 황순태, 정수만, 홍기성이 호응해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북면(진위면) 은산리에서는 정경순과 최선유의 주도로 주민 30여 명이 마을 뒷산에서 만세를 부른 뒤 봉남리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운동을 계속했다.
일제는 4월 1일 평택지역 만세운동을 안성의 양성.원곡 만세운동,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 만세운동과 함께 '가장 광포(狂暴)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4월 2일에는 서탄면과 송탄면, 오성면, 북면(진위면)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서탄면에서는 윤기선 면장의 주도로 주민 400여 명이 면사무소에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송탄면에서는 이날 밤 10시 독곡리를 비롯해 주민 등 500여 명이 각 마을마다 봉화를 올리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오성면에서는 안중리(안중읍 안중리) 주민들이 만세를 부른 후 해산했으며 북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4월 3일 오성면 학현리에서는 김용성, 공재록, 이사필이 주민들을 선동하여 봉오산에서 횃불을 올리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