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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지방을 주도하였다. 산하 교인들과 더불어 지역 사림과 모의 3월 12일의 의성장날 아침 일찍 읍내로 나가서 장터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장꾼들이 다 모인 정오에 시위 운동의 개최를 선언 후 차거는 우리 민족이 독립된 자주 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호소하는 거족적인 행사라는 취지를 알린 끝에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사방에서 호응하는 만세소리 천지를 뒤흔들고 태극기의 물결이 하늘을 덮었다. 이윽고 일본 군경의 살기등등한 검거 선풍이 일어나자 주동자는 내라하고 잡혀가서 오늘 우리들의 거사는 정당한 권리 행사일 뿐 폭거는 아니다하고 맞서 징역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항상 행동의 제약을 받았으나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그들을 비판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다시 구금 당하였드니 광복 후에 출옥 비로소 목자의 외길로 돌아가서 1957년 4월 5일 70세로 타계하였다. 배 파평 윤씨는 춘옥의 녀다. 남은 성록과 태식이요. 녀는 김경식과 이성복이며 손은 영도 근도 길도 인도 정도이다. 198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고 금추에 국비 보조로 묘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