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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5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1920년 5월 대한국 민회와 임 시 정 부 의 주도로 북 간 도 지 역 독립군 조 직의 통합논의가 본격화되자 대한국민회 군 무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대한군무독군부 (大韓軍務督軍府) 부장 최진동과의 연합을 주 도하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를 성립시켰다. 5월 하순에는 홍범도가 이끄는 정일제1군사령부(征日第1軍司令部)에 합류 했다. 이후 3단 독립군의 통합 군단은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병영이 있는 봉오동(鳳梧洞)에 병 력을 집결시켰고 조직을 개편하여 사령관에 최진동, 연대장 홍범도, 제1중대장 이천오, 제2중대장 강상모, 제3중대장 강시범, 제4중 대장 조권식을 임명하였 다. 이때 그는 사령관 최 진동을 보좌하는 부관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연합부대의 병력은 최진동의 군무도 독부계가 약 670명, 홍 범도와 안무의 대한국민 회계가 약 550명으로 총 1천 2백여 명이었으며, 기관총 2문, 장총 약 900 정, 권총 약 2백정, 폭탄(수류탄) 1백여 개, 탄 환은 군총 1정당 150발, 망원경 7개 등의 무 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독립전쟁 참여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가 발발하자 통합 독립군단을 효과적으로 지휘하여 전투 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는 3·1 운동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만주지역 독립군의 국내 진공작전에 민감한 반응을 보 이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함 북 나남 주둔 19사단 소속 야스카와 지로[安 川二郞] 소좌 휘하의 보병대대와 기관총 1개 대대 등의 병력을 동원하여 월강추격대대를 편성하고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에 주둔하고 있는 독립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월강추격대는 보병 37연대 제10중대와 같 은 연대의 기관총 소대 및 보병 75연대 제2 중대, 그리고 헌병대 등 310명 가량으로 편 북간도 지역 독립군의 봉오동전투 관련 『독립신문』의 보도 기사(1920.12.25) 안무의 독립단 북로사령부 사령관 활동을 보도한 『동아 일보』 기사(1922.9.14) 안무 장군의 전사를 보도한 『동아일보』(192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