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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5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두 자녀 잃고 기독교 신앙생활 시작 1869년 11월 9일 서울 정동(貞洞)에서 몰 락 양반인 아버지 이윤영(李允永)과 어머니 조(趙)씨 사이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 다.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고양군 한지면 하남촌 (현 서울 용산구 및 성동구 일대)으로 이주하 여 8세 때인 1876년부터 5년간 서당에서 한 문을 공부하였으나, 가세가 빈한하여 공부를 그만 두었다. 18세가 되던 해인 1886년 6월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22세 때인 1890년 봄 친구의 권유로 군대 에 들어가 있으면서 군대생활을 충실히 하였 다. 1894년 5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한 전투에 초토사(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이 이 끄는 경군(京軍)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 후 일본군 교관 밑에서 훈련을 받고 1894년 10 월에 다시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 핵심공적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 관에서 민족대표로 참석하 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 다.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말년에는  수원 남양교회 목사로 신사 참배를 거부하였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이필주(李弼柱) 목사 민족대표 33인으로 3 · 1운동 주도 일제 말기 신사참배도 거부 신민회 · 상동청년학원에서 구국계몽, 교육활동 “조선은 독립국이다. 조선인은 자주민이란 것을 생 각하고, 어디까지나 그 의사를 발표하려고 한 것이 다. 우리들의 힘이 있는 한 조선의 독립에 다 함께 노 력하자.” - 선생의 신문조서 중에서(1919.8.26)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69.11.9 서울 정동 출생 ● 1903 가을 대한제국 시위대 부교(副校)로 제대 ● 1904.10 상동청년학원 체육교사 ● 1907 서울 상동청년회에 가입 ● 1908 신민회 활동 ● 1918.6 서울 정동교회 담임목사가 됨 ● 1919.3.1 기독교 감리회 대표로 민족대표 33인  참가, 독립선언식 거행 ● 1921.11.4 경성감옥(마포형무소)에서 출옥 ● 1922.12 국내에 잠입한 김상옥 의사를 숙소에서  보호 ● 1942.4.21 수원 남양교회 복무중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