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page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을 시작하여, ’91년에 는 소위 강경대 장례투쟁을 비롯하여 5.18 민중항쟁 정신계승과 전두환∙노태우 구속을 위한 운동을 하였다. ’92년에는 광주대학교 총학생회 사회부장, 투쟁국장 을 하면서 노태우 정권퇴진, 민자당 해체, 민주정부 수립, 간첩단 조작 안기부 해 체 투쟁을 하였고, ’93년에는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투쟁국원 활동을 하면 서 5,6공 군부독재 잔재 청산과 민주대개혁 실현, 쌀수입개방 반대운동에 참가하 였다. ’94년에는 광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투쟁국장을 맡아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쌀 수입개방 반대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95년에는 한총련 투쟁국원으로 활 동하면서‘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투쟁을 주도하였다. ’96년에는 김영삼정권 대선자금 공개, 참민주주의 쟁취, 국민기본권 쟁취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97년에는 제5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 동하면서 노동악법철폐,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100만 학도 총투표를 통한 총궐기, 한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규탄 등의 투쟁을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97년 한총련 투 쟁국장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은신 중, 9월 15일 전남도경 형사기동대의 검거를 피하다가 경찰검거작전 중 광주 소재 아파트 화단 앞에서 운명하였다. 당시 경찰은 ’97년 9월 15일 청암아파트에 은신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전남 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소속 25명은 밤 11시경 도착한 후 1시간 가량 잠복 근무하 다 검거에 나섰고, 동지는 검거를 피해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와이어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4층 높이에서 추락, 화단으로 떨어졌다. 발견 즉시 119에 신고하여 전남대 부속병원으로 후송, 응급치료하였으나, 16일 밤 12시 33분경 추락에 의한 간우엽 손상 및 과다 출혈 사망으로 결론짓고 내사종결하였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남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경 장 ○○○는 경사 특진을 위해 동지의 후배 ○○○를 프락치로 고용, 1,500만원 상당의 금액과 향응을 제공하였고, 이에 후배 ○○○는 자신의 집으로 동지를 유 인하였다. 또한 ○○○검사는 ○○○의 프락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범인은 닉죄로 구속하는 등 법원을 기망한 직권남용 행위와, 경비실 부근에 있던 전남경 찰청 형사기동대 ○○○은 화단에 떨어진 동지를 발견하고“여기 있다”고 외치면 서 넘어져 있는 동지를 여러 차례 발로 밟고 소지하고 있던 몽둥이로 가격하여 죽였음을 밝혀냈다. 김준배 (당시27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0년 전남 장흥 출생 19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 입학 1992년 광주대학교 투쟁국장 1993년 남총련 투쟁국원 1994년 광주총협 투쟁국장 1995년 한총련 투쟁국장 1997년 한총련 투쟁국장 1997년 9월 16일 운명 끝내살리라 |107| |10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