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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의 3.1독립운동 이 고장의 3.1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가장 치열하였다.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과 원곡면은 일제가 민족대표 33인을 재판할때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과 함께 인용하였던 전국 3대 실력항쟁지이다. 이곳의 3.1운동은 1919년(기미년) 3월 11일 오전 11시에 양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로부터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남진우(보성전문학교학생)와 고원근(양성보통학교 졸업생, 선린상업학교 학생)의 주도로 당시 경찰관 주재소가 지척에 있고, 일본인 교장과 교사가 제지하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그후에도 계속하여 교정과 뒷동산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4월 1일 밤에는 각 마을의 주민들이 면소재지인 동항리에 집결하여 만세를 외쳤다. 이때 군중들은 마침 성은고개를 넘어 온 원곡면민들과 합세하여 약 2천여 명의 무리를 이루어 만세를 외치며 경찰관 주재소를 파괴, 불사르고 계속하여 면사무소로 달려가 기물, 집기, 서류를 끌어내 불지르고 우편소 전화선을 끊고 전주를 절단하여 통신을 차단시켰고 기물 서류를 파괴 방화하였다. 그들은 계속하여 일본인 잡화상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습격하여 불태우고 파괴하는 등 격렬한 항일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항쟁으로 361명이 검거되고 127명이 옥고를 치루었다. 그중에서 24명이 순국하였다 또한 일본 경찰관과 헌병대가 주모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9채의 가옥이 불에타고 40명이 태장 60~90대를 맞는 등 막대한 피해의 고난을 당하였다. 양성의 3.1독립운동은 보통학교 학생들로부터 시작하여 각 마을에 퍼졌고 원곡면민과 동맹한 지역 연합적 성격을 띤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항일독립투쟁의 실력항쟁이다. (이 항쟁에 참여하여 형을 받거나 태형을 맞은 양성면 항일투사의 명단은 뒷면에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