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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창만리 두만동은 6.25동란중 1950년 12월 31일 중공군의 정월 대공세로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1월 4일 두번째 서울이 함락되는 시점에 적진 후방에서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가 반공청소녀들과 1951년 4월 초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연합군의 3월 반격계획인 "리타"작적의 기여로 혁혁한 전공을 남긴 터전이다. 당시 지대장은 육군소령 김동석이다. 그는 나철호를 특별공작대장으로 하고 공작조원 허지선 정선모 유도화로 하여금 이 곳 반공청소년 25명과 규합하여 항전결사대로 점조직하여 파주군내와 임진강변을 주로한 적정감찰체제를 수립 24시간 동태를 파악 보고하고 특히 야간에만 행동하는 부대와 물자의 남하를 추적 탐색하고 때로는 기습공격함으로써 그들의 임무를 지연시키고 퇴각하는 적 부대는 매복함으로써 대오를 유린케 하는등 후방교란작전으로 전력약화를 초래하는 한편 임진강 북방 개풀군에는 육군중위 김진수를 유격대장으로 하는 공작조 육군상사 강성식 김홍 홍순문을 잠입시켜 작전범위를 장단 개성까지 넓혀 행동하면서 연합군의 공세에 맞추어 황해도 평산에 침투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약 100일간의 작전은 적 행동의 감시와 더불어 기습과 매복이 50여회 적 생포 37명을 밀로로 후송하였고 그 중 중공군 소대장 1명 인문군 장교 2명이 아군 작전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기간 중 정사상자및 물자손실은 막대하였다. 우리측의 피해는 1951년 4월 1일 평산에서 전개된 격심한 유격전에서 희생된 자를 포함 전사 4명 전상 10여명이었다. 아 장하다 우리의 아들 딸 맨손으로 이 따을 지켰노라. 그리고 아 연합군 진격의 길을 열어주었노라. 이 정사에 빛나는 조국수호의 반공정신 그 공적을 길이 남기고 산화한 청소녀 영현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 땅 두만동에 이 비를 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