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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박동완 선생 53 롯한 종교단체 등 각 사회단체에서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교포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 신간회와 재만동포 구제사업으로 분주 하던 1928년 중반, 그는 미주 동지회(同志 會)의 자매단체인 흥업구락부를 통해 하와 이 한인기독교회의 목회자로 초빙을 받게 되었다. 결국 미주 동지회와 긴밀히 연결되 어 있는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의 청빙을 받 아들여 1928년 8월 25일 경성역을 출발, 9 월 8일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 섬 와히아와 (Wahiawa)의 한인기독교회 초대 담임목사 로 부임하였다. 부임 이후 1940년까지 와히아와 한인기독 교회에서 12년간 목회를 하면서 하와이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와히아와 한인 기독교회에서 목회에 힘쓰는 한편, 교회 부 설 한글학교를 확장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 까지 두루 가르치며 교포 2세들의 민족의식 을 일깨웠다. 그리고 1931년에는 하와이 학 생모국방문단을 이끌고 귀국하여 6월부터 9 월까지 석 달간 머무르며 중앙YMCA회관 등 지에서 하와이 동포의 근황과 신앙생활을 알 리는 강연을 하였다. 1934년 7월에는 『한인기독교보』를 창간하 여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 한편,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의 중앙이사로 활동하다가 1935년 1월 중앙이사국장에 취 임하여 이승만 등과 함께 한인기독교회를 이 끌어나갔다. 또한 동지회의 와히아와지방 대 표로도 활동했다. 1938년 8월 오랜 반목관계 에 있던 하와이 국민회와 동지회가 합동으로 제28주년 국치기념대회를 거행할 때 연사로 나서 연설하였다. 이처럼 만리타향에서 민중의 목자로 교회 사역에 몰두하던 도중, 1941년 초 불의의 병 을 얻어 그해 2월 23일 이국 땅 하와이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우리 나이로 57세였다. 국내의 가족과 친지들은 유해를 들여와 장례 식을 거행하고자 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부 고조차 낼 수 없었다. 그의 유해는 한 달 뒤 국내로 돌아와 3·1운동 당시 고락을 함께 했 던 동지 함태영 목사의 집례로 망우리 공동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6년 현재의 국립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을 추서하였다. 박동완이 연사로 나서 연설한 제28주년 국치기념대회 보도 기사 (『국민보』 1938.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