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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안무 장군 53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중국 연변(북 간도) 허룽현(和龍縣)으로 망명하였으며, 주 로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사와 교육활동에 주력하였다. 이후 1919년 용정(龍井) 3·13만 세운동이 촉발되고 김약연·구춘선·마진·유찬 희·정재면 등 간민회(墾民會) 계열의 인사들 이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자 이들과 함께 적극 적인 활동에 나섰다. 대한국민회는 회장 구춘선의 지휘 아래 북 간도의 엔지(延吉)·왕칭(汪淸)·허롱·훈춘(琿 春) 4개현의 한인 대표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 한 독립운동단체로 산하에 약 80여 개의 지 회를 두고 한인들의 자치활동을 보호·육성하 는 한편, 독립군 양성 임무도 맡고 있었다. 특 히 대한국민회는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관 관 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었다. 대한국민회 소속 국민회군 사령관 활동 1920년 봄 대한국민회가 산하에 독립군 부대로 대한국민회군을 조직하자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제1중대장 조권식, 제2중대장 임병극, 향관(餉官) 허동규·김석두, 군무위원 이원(李園)·마룡하·최기학 등이 주요 간부였 고 중요 근거지는 엔지현 즈런향(志仁鄕) 이 란구(依蘭溝)였다. 국민회군은 대한국민회 지회에 소속된 각 호에서 18세 이상 40세 미만의 장정 1명을 차출하여 지방총회에 보내면 사령부에서 약 2개월 간 군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군으로 양성하였다. 교육 내용은 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정신교육과 집총교련·집총 야외 교 련 및 일본 보병조전(步兵操典) 등의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명월구(明月溝)에 사관 학교를 세워 병사들의 훈련에 힘을 기울였으 며, 대한국민회의 도움을 받아 연해주의 니 콜리스크 등지에서의 무기 구입을 위해 힘썼 다. 또한 국민회군은 대한국민회의 관할 지 역을 순회하며 한인들을 보호하는 경찰군으 로서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다. 용정의 일본총영사관에서 파악한 북간도 대한국민회의 편제 및 간부 명단(1920 년 12월 20일,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안무가 이끌던 국민회군의 주둔지 터(중국 길림성 연길 시 의란진 춘흥촌,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