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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박인호 선생 53 구파가 비타협 민족주의세력 및 사회주의세 력과 연대하여 조직한 신간회(新幹會) 참여를 후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역 할에 힘입어 1932년 다시 천도교 교주 자리 에 올랐다. ‘멸왜기도(滅倭祈禱) 운동’과 환원 천도교 교주로서 멸왜기도운동이라는 종 교적 민족운동을 이끌었다. 1936년 8월 14 일 지일기념일(地日紀念日)에 지방에서 올라 온 천도교 구파 지도자들에게 비밀리에 일제 의 패망을 재촉하는 기도를 올리도록 하였 다. 이 지시에 따라 최준모·한순회·김재계·김 경함 등이 황해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교인들에게 “개같은 왜적놈”을 소멸하고 독 립을 달성한다는 내용의 ‘멸왜기도문’으로 기도하도록 전달하였고, 이에 따라 각지의 교인들이 멸왜기도를 행하였다. ‘멸왜기도’라는 특별기도가 1938년 2월 17일 최택선(崔澤善)의 비밀 누설로 발각되 는 동시에 1936년의 멸왜기도운동 역시 드 러나 전국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났다. 천도 교 지도자 수십 명과 교인들을 합하여 256 명이 투옥되었다. 하지만 5월 20일부터 모 두 석방되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이 사건은 1936년의 멸왜기도사건을 문제 삼은 것이 지만, 1938년에 발각되었으므로 ‘무인(戊寅) 멸왜기도사건’이라 부르기도 한다. 박인호는 당시 멸왜기도운동을 주도하였음에도 84세 의 병약한 노인이라 일본 경찰의 체포를 면 할 수 있었다. 1940년 4월 3일 오후 3시 35분 서울 내 수동 자택에서 86세로 서거하였다. 천도교 의 신구파가 합동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천도교 멸왜기도사건 보도기사(『조선일보』1938.4.2)  「천도교 제4세 교주 박인호씨 별세」기사(『동아일보』 194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