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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雲圃 盧公 載喆 求國記跡碑 (고 운포 노공 재철 구국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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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1920년 1월에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김좌진(金佐鎭)의 밀명을 띠고 입국한 김영진(金瑛鎭)과 협력, 조속한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서 동지 조병채(趙炳彩) 등과 상의하고 충청남도 및 전라북도 등지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수천원의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 경리국 경고문, 유고(諭告) 등의 격문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체포되어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9년형을 받고 1927년 2월까지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향리에서 사숙(私塾)을 운영하면서 청장년의 정신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