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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동족상잔으로 산하를 피로 붉게 물들였던 두메산골 무주는 참옥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당시 청년연맹 대동청년단장에 온 몸을 던져 앞장선 초대단장 전 제헌국회의원 신현돈선생, 2대단장 전 제헌국회의원 김교중선생 그리고 3대 단장에 대한청년단을 역임한 오문환선생은 납치되어 욱중에서 목숨을 잃었고 4대 대한청년단장 김동헌선생은 남하여여 부대집결에 공이 많았으며 지역치안과 향토방위와 공비토벌은 물론 용사들의 보급품을 지원하면서 서무활동에 힘써왔다. 6.25동란으로 무주군 모든 행정은 공백기에 들어가고 단원은 분산되었다.
잔류된 단원 김영희, 박영식, 이서균, 박일용등 10여명은 공산군 치하에서 지하조직활동으로 고통스럽게 지내오다가 반공투쟁단을 조직하여 결사적인 활동을 하던중 낙동강전선에서 패주하는 공산군의 무기와 실탄을 빼았고 1950년 9월28일 무주경찰서를 탈환하여 태극기를 꽂고 지역치안활동을 시작하였다.
남하하던 국민방위군 편대장 김창신, 김준희, 이승익, 허위경, 이희태, 박희성, 김창수등 30여명은 제2신병교육대에서 모병업무와 신병교육에 힘써오다가 원대복귀하면서 기존의 반공투사들과 합류하여 계급, 군번없는 용사들을 이끌고 무주치안수복 공비토벌작전에 신명을 다바쳐 공적을 남기고 무주경찰이 진격할때까지 군청과 경찰서를 결사적으로 사수하였다.
피비린내나는 지역치안 수복방위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동지들의 용감무쌍했던 혁혁한 공적을 후세들에게 반공정신의 길잡이로 승회시켜 이 비에 새기고 무주군사에 길이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