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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명준(호 묵수 1900년7월 26일생 1959년 8월22일망)은 동래정씨 치운옹과 밀양박씨의 장남(차남은 기준)으로 경북 칠곡군 기천면 신동39)에서 태어나 경주최씨 봉환과의 슬하에 두 아들 영민 영욱과 세딸(서 문상억 유태종 김종욱(을 두셨고 영민아래 현철 영욱아래 왕근 무근 손자를 얻으셨다. 공은 약관으로 일본 동경 척식대학 재학중 피압박 민족해방과 피착취계급해방을 위한 무정부주의운동에 투신하셨고 귀국후는 서동성(일본천황폭파미수 불령사대역사건관련자) 신재모 방한상 서학이(흑파) 하종진 김소 성마명 우해룡 안달덕 김동석 등 제동지와 더불어 진반련맹을 조직하고 일제식민지통치기관의 파괴와 그 요인들의 제거를 계획추진중 1926년 7월 행동직전에 총검거되어 익년 8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언도를 받아 형기를 마친뒤에 함북 청진에서 상업에 종사하면서 만주방면 독립군의 자금조달에 힘쓰셨다. 10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여 귀향하신후에는 경북신문 대구매일신문 대구일보 영남일보등의 편집국장겸 주필을 역임하시며 15년간 향토언론계의 중진으로서 봉사하시다가 1959년 8월 22일 영남일보에서 집무중 순직하셨다. 광복전 25년은 민족해방전선의 최전선에서 직접 투쟁을 지속하셨고 광복후 15년은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만인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하여 언론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