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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이 기고한 '파묘될 위기 처한 애국지사 황진남 선생 묘소'라는 기사가 있었다. 미전수 훈장 전수와 소재 불명 묘소 정보, 중복 포상 문제를 꾸준히 국가보훈처에 제보했던 필자는 최근 묘소 찾기 함경도 편에서 황진남 선생의 이름을 발견했다. 황진남(1897.1.21.~1970.5.13)은 함경도 함흥 태생으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도산 안창호를 수행하여 통역관 겸 임시정부 외무부 참사로서 도산의 외교 활동을 도운 최측근이었다.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처음 만난 한인, 체코군단과 임정 요인 간의 통역, 독일 유학생 조직 유덕고려학우회 활동, 주일 미군 요원 등 국제사에서도 재조명되어야 할 인물이지만 역사 속에 묻혔다. 충칭 시기 임정 요인 엄항섭은 “황진남 군처럼 하던 공부를 중지하고 임시정부에 투신하라”며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임시정부 의정원 활약의 공훈을 기리어 2019년에서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후손 및 묘소 불명인 채로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조선일보』 1970년 6월 14일자, 「입법의원 지낸 황진남씨 별세」 기사에 황진남 부고가 실려 있다. 일본 오키나와 주일 미군 특수전 부대에서 일하다가 1970년 5월 13일 73세로 사망해 고인의 유해가 6월 13일 김포공항에 도착 후 서울 용산 미8군 내에 안치되었고 6월 15일 경기도 파주 기독교공원묘지에 묻힐 예정이라 보도했다. 필자는 기사를 고증하고자 지난달 24일 기독교공원묘지가 하늘나라공원으로 바뀐 것을 파악하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안장자 정보를 확인한 뒤 파주시 탄현면으로 향했다. 현지에 도착해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경사로를 따라 마침내 선생의 묘소를 마주한 순간, 처참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20평 묘소는 50년간 찾아오는 이 없이 방치되어 있었고, 분묘개장 공고 팻말이 박힌 채 파묘될 위기에 처한 급박한 상황이 아닌가. 공원 측에서는 필자의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서 일단 성심성의껏 묘역을 정돈해 주었다. 황진남 선생의 슬픈 가족사는 국가보훈처 서동일 박사를 통해 처음 듣게 되었다. 광복 후 여운형의 비서를 지내고서 미 대사관에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프랑스인 아내(시몬뇨)와 갓난 아들(황만생)은 북한군에 체포되어 북한과 시베리아로 끌려 다니며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부인은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 정부의 보호를 받아 고국으로 돌아간 뒤 파리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재가했다. 선생은 맥아더 사령부인 일본 도쿄 GHQ에서 근무했고, 아들이 고아원에 수용되기 직전 구출되어 오키나와에서 같이 살다가 캐나다로 보내졌다는 사실이 원로 아나운서 위진록 씨의 회고록에 전하며, 유족으로 조카가 생존했으나 현재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불행한 가족사만큼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 선생의 쓸쓸한 묘비를 뒤로 하며 허무하게 파묘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막는 데 내 역할을 다했다. 이제 현충원에 편히 모실 수 있도록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광복회, 이북도민회에서도 관심 가져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출처 : 통일뉴스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