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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6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命)』을 창간하자 그 주간을 맡아 교인들을 대 상으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조선적 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깨우치는 데 힘썼다. 『신생 명』 20호에 실은 「그리스도종교와 우리의 사 명」이라는 글에서 본래의 그리스도 복음으로 돌아가 거기에 온전히 순복함으로써 사랑과 정의와 인도의 민족이 될 것을 주장하였다. 신간회 간사로 민족협동전선의 기초를 세워. 조국 없는 만주의 동포 권익 옹호에 참여 1927년 1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 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정치경제적 각 성’, ‘공고한 단결’, ‘기회주의의 일체 부인’을 3대 강령으로 하는 신간회(新幹會)를 발기할 때, 흥업구락부의 이상재·유억겸·안재홍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신간회 가 창립되자 본부 상임간사를 맡아 회의 실 무를 관장하였다. 이처럼 신간회 일로 동분서주할 때, 중국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지배하에 중국 동북지 방(만주)에 거주하던 수십만여 명의 동포들 이 중국 관헌의 폭압으로 박해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신간회를 비롯한 각 사회단 체의 주요 인사들은 12월 9일 조선교육협회 회관에 모여 상설기관으로 ‘재만동포옹호동 맹’을 창립하고 위원장에 안재홍을 선출하 였다. 이 때 그는 중앙상무집행위원, 특파원에 선정되어 1928년 1월 이도원과 함께 만주의 봉천성(奉天省)과 길림성(吉林省) 일대를 돌 며 재만동포의 상황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귀국한 직후 재만동포옹호동맹에서는 1928 년 2월 13일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그간의 활동 상황과 향후 대책문제를 논의했다. 이 날 보고대회에서는 박동완과 이도원이 재만 (在滿) 동포의 상황을 보고하였고, 이어서 재 만한인(在滿韓人)의 입적과 이중국적 해제를 지지한다는 방침 아래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 정하였다. 당시 재만동포 옹호 활동은 재만 동포옹호동맹뿐만 아니라 감리교 교단을 비 재만동포옹호동맹의 특파원으로 만주를 다녀온 박동완·이도원 관련  신문 보도기사(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경기도 양평군의 박동완 생가 터 전경(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