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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4년 5월 Special Theme    월간 『순국』 400호 기념특집 ‘순국선열유족회 『순국』 발간과 독립운동가들의 기록 편찬’ 서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다. 백암은 운암의 직제자 이고, 김승학은 스승인 국동(菊東) 조병준(趙秉準, 1862~1931)을 통한 재전제자이다. 김승학이 상해 시절 백암을 《독립신문》 주필로 모셨던 것도, 후일 나라를 찾는 날 『한국독립사』를 함께 쓰자고 한 것 도 이러한 인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김승학은 《독립신문》 발행에 참여하면서부터 관 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후일 그가 만주에서 일제에 체포되어 팔다리가 부러지는 수십 차의 악형 을 받은 이유가 대체로 이 사료 때문이었다. 일제 경 무당국이 만주 최고의 무장투쟁 수뇌였던 김승학에 게 병력 상황이나 무기 출처보다 더 집요하게 추궁 했던 것이 바로 독립운동 자료의 은닉처였다. 천신 만고 끝에 모아진 자료는 내몽골 포두(包頭)에서 독 립운동을 하고 있던 스승 조병준(趙秉準) 선생에게 보내졌고, 이 자료는 해방 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통해 김승학에게 전해졌다. 김승학이 평생의 숙원사업인 ‘한국독립운동사편 찬위원회’ 간판을 처음 올린 곳은 1953년 피난지 부 산에서였다. 당시 유일한 독립운동자 단체였던 ‘애 국동지원호회’의 이름을 빌린 편찬위원회는 위원장 에 김승학, 위원으로 홍주·안재환·백기준·채수반·이 영선·김진호·이학수(운허 스님)·신백우·최만영 등 이 었다. 김승학이 40여 년간 모은 자료와 개인이 제출 김승학이 『한국독립사』 편찬 때 기초 자료로 활용한 독립운동 관련 기록과 초고들(필자 제공). 「남만주 독립단 약력」 · 「남북만주 단 체 사편」 김연산 석암장 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