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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4년 4월 Special Theme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5주년 특집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움직인 지도자들’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총사령이 되다 임시정부와 중국국민당 정부의 교섭 결과 중국 낙 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그가 총책임 을 맡았다. 그러나 한인특별반을 통해 항일전의 근 간이 될 장교를 양성하려던 계획은 곧 난관에 부딪 혔다. 일제의 항의에 굴복한 중국국민당 정부가 한 인특별반을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인특별반 에서 배출된 요원들은 나중에 한국광복군 간부로 활 동했다. 1934년에 접어들면서 중국 관내 독립운동 단체의 통일운동이 본격화되자 지청천은 신한독립당을 결 성했다. 이어 1935년 7월 민족통일전선 정당으로 민 족혁명당이 출범했다. 그는 민족혁명당 창당대회에 서 중앙집행위원과 군사부장에 선임되었다. 민족혁 명당 군사부의 주된 임무는 중국 화북(華北)지방, 만 주 등지에서 항일 군사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서기부 부장으로 당무를 총괄하던 김원봉과 더 불어 양대 세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37년에 이 르 러 두 세력의 대립은 격화되었고, 그해 4월 지청천 계열은 따로 조선혁명당을 결성했다. 조선혁명당의 중심 인물은 대부분 만주 독립군 간 부 출신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독립운동 전선에서 통일의 요구가 더 커지자 김구 중심의 한국국민당, 조소앙 중심의 한국독립당과 함께 1937년 7월 한국 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한 데 이어 나중에는 한 국독립당(집행위원장 김구)으로 통합해 임시정부의 지주 정당을 맡게 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임시정부는 군사조직을 마련 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했다. 1939년 10월 임 시정부 군무부장에 취임한 지청천은 총사령부를 먼 저 구성하려고 했다. 마침내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발족시켰다. 총사령 지청천을 비 롯한 참모장 이범석, 참모 김학규 등의 간부진은 대 부분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사람들이었다. 따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 간부들과 함께한 지청천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1942.5,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