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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규창이요 호는 성남이시다. 공은 충문대가의 후예로서 능시능문하고 청렴강직하신 의사이시니 어찌 시대의 비운 경술국치의 민욕을 좌시하랴. 항시 국권회복을 염원하시드니 서기 1919년 기미 3월 1일 조국광복의 민족함성이 나자 공은 결사구국을 다짐하며 이곳 원곡장성 3.1운동 선봉에 서섰다. 시는 동년 4월 1일 원곡면 소재지에 운집한 천여 군중 선두에서 서 대한독립만세을 고창하며 양성면으로 진격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기관인 면사무소 경찰관 주재소 우편소 등을 산산 파괴하고 충화하며 일본인 등을 완전 축출하였으니 이는 민족적 설분이요. 독립투사의 개가였으리라. 연이 슬프도다. 국권 없는 민족이요 적손공권 엇찌하랴. 공은 왜적에게 피체되여 형언할 수 없는 비인도적 악형끝에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시여 장장 2개 성상의 옥고를 치루셨으니 공의 약관 20세시였다. 이 엇찌 통탄지사가 아니리요. 근세조국광복과 더불어 3.1운동 독립유공자로 발탁되시어 서기 198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추서를 받으시니 이 또한 충문 대가의 후광이리라. 오호라. 공은 6남을 남기시고 서기 1970년 경술 4월 7일 서거하시며 배위 봉화 정씨는 서기 1973년 계축 6월 13일에 졸하시어 이곳 만년유택에 합봉하시니 번영된 오늘의 조국에서 어찌 고 위훈을 잊으랴. 서기 1984년 정부의 애국지사 묘소 단장지원 계획에 의하여 이 비를 세우도다. 서기 1984년 갑자 중추 경주후인 이종두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