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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나중소 장군 51 의 이만으로 병력을 이동하였다. 1921년 초 지원을 기대하며 이만까지 왔 으나 소련측은 독립군들이 무장을 해제한 후 자유시(自由市)로 이동해 자신들의 군대에 편 입될 것을 요구했다. 일부는 이를 수용한 측 도 있었으나 북로군정서와 일부는 이를 거부 하고 같은 해 3월 하순 따로 대한총군부(大 韓總軍府)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921년 4월 12일에 이동 중 흩어졌다 다시 모인 36개의 독립군단 및 독립운동 단체의 소속원들을 집 합시켜 ‘독립군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 에서는 먼저 그 장소에 모인 36개 독립운동 단체 소속원들 모두를 가입시켜, 대한총군부 를 없애고 대한독립단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간부진에는 총재 서일, 부총재 홍범도, 고문 백순(白純)·김호익, 외교부장 최진동, 사령관 겸 참모부장 김좌진이었고, 나중소는 이장녕 과 함께 참모장에 선임되었다. 대한독립단이 성립되고 곧 총재 서일의 명을 받고 현천묵 (玄天默)과 만주로 파견되었다. 북만주에서 신민부 간부로 활동 1924년 11월 24일 남만주에서 통합 독립 운동 단체 정의부(正義府)가 성립했다. 이에 북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도 통합을 위해 움직였다. 김좌진·남성극·최호(崔灝)·현천묵· 조성환등은 1925년 1월 북만주에 근거지를 가진 북로군정서·대한독립군단·중동선교육 회(中東線敎育會)와 16개 지역 대표들에게 연 락해 목릉현(穆陵縣)에서 부여족통일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들과 합의를 이루어 1925 년 3월 10일 정의부와 마찬가지의 독립군정 부인 신민부(新民府)를 성립시켰다. 신민부 성립 초기 중앙집행위원장은 김혁(金赫), 민 사부위원장은 최호, 외교부위원장은 조성환 이었고, 군사부위원장 겸 사령관은 김좌진이 었다. 그는 참모부위원장 겸 검사위원에 임 명되어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신민부는 동빈현(東賓縣)에 본부를 두고 닝 안·무단장(牧丹江)·목릉·둥닝현(東寧縣) 등을 중심으로 중 · 소 국경지역까지를 관할지역으 로 삼았다. 그리고 이 지역 내에 사는 한인들 을 대상으로 경제적 안정을 위한 실업 장려, 2세들을 위한 민족교육 등 민정활동과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무장 활동을 펼쳤다. 신민부 본부는 동빈현에 두었지만 닝안현 에 지부를 만들었고, 모아산(帽兒山)·일면파 (一面坡)·오길밀하(烏吉密河)·해림(海林)·무단 장(牧丹江)·목릉·소수분(小綏芬)·둥닝현 등에 통신기관을 설치해 관할지역을 관리하고, 무 장활동을 위한 연락망을 구축하였다. 한편, 이주 한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중국측과 교섭하였다. 각 구의 책임 자들은 그 지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독립군요 원을 모집하기도 하고, 의무금을 거두어 신 민부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그러나 둔화현에 이처럼 새로운 독립운동 근거지를 구축하여 활동하던 도중, 1928년 8월 18일 병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 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