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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조선의용군의 활동과 만주(중국 동북) 진출 51 산당이 조선인을 주요 동반자 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대 체로 조선인의 추방을 목표로 삼았던 중국국민당 측과는 다 른 모습을 보였다. 조선의용군 활동의 역사적 의의 첫째, 중국 관내지역에서 가 장 활발하게 항일투쟁을 전개 하였다. 그 배경은 중국 화북 지방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조선의용군 창 립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군의 공세는 약화된 유리한 상황과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 독립까지 염두에 둔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특히 만주(중국 동북)에 독립동맹 분맹을 세우고 한반도와의 연계 건립에도 노력하였다. 둘째, 일제 패망 후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던 만주 조선인 보호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국공내전에 조선인들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조선의 용군이 그 불씨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용군의 투쟁 이 없었다면 조선인들 모두 추방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셋째, 조선의용군 활동의 한 결과로 ‘연변조선 족 자치주’가 성립될 수 있었다. 조선 말기부터 중국 연 변(북간도)은 특수한 지역이었다. 한국이냐 중국이 냐 소속 여부도 늘 문제가 되었던 곳이었다. 넷째, 조선의용군 후신부대가 한민족의 동족상잔 이기도 한 6·25전쟁의 한 당사자가 되었던 것은 어 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공내전 이 끝나면서 조선인 부대가 대거 북한으로 들어왔 고 1950년 6·25전쟁의 한 당사자가 되었던 것이다. 필자 염인호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 국민대학교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1997.9~2023.2), 현재 서울시립 대 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논저로 『김원봉 연구』(창작과 비평사, 1993),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나남, 2001),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 -』 (역 사비평사, 2010) 등이 있다.  2025년 4월 7일 심양 우홍구(于洪區) 대흥향(大興鄕)의 오가황조선족소학교에서 열린 조 선의용군 오가황회의유적지 교육기지 착공식(흑룡강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