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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盧明愚) 충남 부여 ○ 출생 : 1897.08.05. ○ 사망 : 1938.06.11.
공주영명학교에 재학중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항일전단 1천여매를 인쇄하여 동지 유준석과 함께 1919년 4월 1일 공주시장에서 살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8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하였으나 재판을 받는 동안 4개월여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27년 부여농민학원을 창설하고 이를 후원하기 위한 농민청년회 농민조합을 조직하였다.
1931년 1월 강병국, 강성모, 강일, 강일구, 노명우(盧命愚), 류기섭, 이호철, 조병철, 조병순 등 19명의 동지들과 금강문인회를 조직하여 부여군 내 여러 마을에 야학을 개설하고 농촌의 청소년들에게 한글, 산술등의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토론회를 갸최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열정을 쏟았다.
1933년 7월에는 청년들을 규합하여 부여농민조합연합회의 지부인 대야구락부를 위장 조직하고 항일 농민운동에 힘쓰던 중 1933년 12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5년 11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하였으나 재판을 받는 동안 2년여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가 1990년 훈격을 상향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