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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한용운 선사 51 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왔다. 설악산 백담사에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배웠지만, 문명세계를 알 고 싶은 호기심으로 세계일주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세계일주를 시베리아에서 중단하고 백담사로 돌아왔다. 이후 속세와 인연을 끊 고 연곡(蓮谷)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정식으 로 승려가 되었다. 불교사상을 탐구하다가 일본으로 들어오 는 문명세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1908년에는 잠시 일본에 유학하였다. 6개월의 짧은 유학 생활에서 불교 근대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확 인할 수 있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하여 불교의 혁신 을 주장하다 1910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문명세계에 적 응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인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다. 이 책은 1913년에 발간되었는데, 이때부터 불교의 혁신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1910년 10월 친일승려 이회광(李 晦光)은 한국의 원종(圓宗)과 일본 조동종(曹 洞宗)과의 합병을 발표하였다. 한용운은 이 를 정치적 상황에 편승한 친일매불(親日賣 佛) 행위로 단정하였다. 그리하여 이회광 일 파를 민족불교 파괴자로 규정하는 한편, 박 한영(朴漢永), 진진응(陳震應), 김종래(金鍾來) 등과 함께 격문을 돌려 1911년 2월 송광사에 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 서 원종에 대응하는 임제종(臨濟宗)을 창 립케 하였고, 그 이후 임제종 종무원은 범 어사에 두면서 임제 종 중앙포교당을 서 울에 설립하였다. 이 때 관장 직무대리로 임제종운동을 진두 지휘하였다. 1914년에는 고려 대장경의 핵심적인 내용을 축약한 『불교대 전』을 간행했으며, 이후 교양서인 『정선강의 채근담』을 간행했다. 그리고 계몽 잡지인 『유 심(惟心)』을 발간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추구하던 불교의 대중화뿐만 아니라, 대중들 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행보였다. 한용운 생가(복원,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492, 독립기념관 제공)  『조선불교유신론』 표지(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