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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항일운동추모비문 한반도의 땅끝 해남은 기온이 온화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3면이 청정해역으로 둘러싸인 애국 충절의 고장이다. 내륙으로는 두륜산, 달마산, 금강산, 천태산, 주작산 등 명산이 동러로 뻗어내려 절역을 이루고 있고, 바다로는 완도와 진도의 크고 작은 521개의 섬과 해남의 65개 섬들이 비단결같이 어우러져서 태풍과 해일의 진로를 차단해주고 있다. 해남은 서산대사의 예언처럼 삼재를 막을 수 있는 축복받은 고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서깊은 고장에도 일본에 의한 침략의 흔적은 무수히 남아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남동쪽에 위치한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잦은 침략과 노략질을자행해 왔다. 이들은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롣 드러냈다. 이 후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을 일으켜 우리 국토를 유린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라고 했다. 특히 거북선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침시킨 율돌목 전투는 해남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세계해전사상 유례없는 대첩으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난후 일제는 조선 침탈의 야욕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1894년에는 척양척왜를 부르짖었던 동학농민혁명군을 참살했으며 1909년 대흥사 심적암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밀려내려온 의병과 해남에서 궐기한 의병, 승려등 66명을 참살하는 만행을 지질렀다. 그 이듬해인 1910년 일본은 결국 마수를 드러내 조선을 강제 병합시키고야 말았다. 이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1919년에는 전국적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해남에서도 해남장날과 우수영 장날에 1,000여명씩 4~5처례 궐기하여 항일독립만세운동을 펼쳤으며 이때 투옥과 옥사한분이 74명에 달했다. 그뿐인가? 광주 독립만세운동(1929년)과 호남최대의 항일운동단체인 전남운동협의사건(1931~1944)을 총 327명이 순국하시거나 투옥되었다. 부모형제, 처자식, 고향과 재산이 없는 나라가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이었겠는가? 애국지사님들은 일제 강점기인 36년동안 일제에 의해 감시와 핍박을 받았으며, 해방된 조국에서도 독재정권의 외면과 무관심으로 그 고귀한 희생정신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선열들의 값진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 이제 우리들 이 한마음으로 조국해방 68년만에 해남항일운동추모비를 건립하고 순국애국지사님들에게 헌정한다. 해남군민과 해남항일운동희생자 추모사업회 임원 일동(글 오길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