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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당(思邠堂)의 유래
사빈당 현판의 글씨는 1980년대 초 고(故) 한형석(韓亨錫) 선생이 쓴 것이다. 한형석 선생은 1910년 동래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독립운동가, 항일 군가의 작곡가, 가극 연출가 등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부산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96년 향년 87세로 부민동 3가의 자택에서 작고하였다. 한형석 선생은 독보적인 필법을 창안한 서예가로서도 유명하며, 서울 부산 등지에서 몇 차례 서예전을 개최하였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의 어록을 뽑아서 「충무공 추모 서예전」을 전시할 정도로 충무공의 충절을 흠모했다고 한다.
사빈당의 '사빈(思邠)'은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다스렸던 '빈(邠)'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고공단보는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文王)의 조부(祖父)이다. 당시 빈은 주나라의 도읍지로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순읍현(旬邑縣) 서남쪽에 위치한 땅이었다. 고공단보는 빈땅을 덕과 의로서 다스렸으므로 온 나라의 백성들이 그를 받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서북쪽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땅과 백성을 요구하였다. 백성들은 분노하여 싸우자고 하였으나 고공단보는 백성들을 죽여가면서 군주기 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빈을 떠나 기산(岐山)에 정착했다. 그러자 빈의 모든 백성들이 고공단보를 따라왔으며, 이웃나라의 백성들까지도 그의 덕을 칭송하면서 귀순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사빈당은 '고공단보와 빈'의 고사(古事)에 빗대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대한민국은 북한의 침략에 의하여 서울을 내주고 부산에 임시수도를 만들었다. 이처럼 임시수도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공단보의 빈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따라서 모일 것이며, 곧 빼앗긴 땅도 수복할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