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page


504page

임자진리교회 약사. 본 교회는 1932년. 섬마을 복음전도자로서 순교한 초대교역자 문준경전도사에 의하여 개척설립된 최초의 교회입니다. 복음전파의 열정이 남달랐던 문준경전도사는 1930년 당시 목포교회(현, 북교동교회) 집사신분으로 친척들이 살고 있는 임자도에 자주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시조카 정태성씨의 집을 근거지로 전도활동을 한것이 진리교회의 태동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준경전도사는 탁월한 명창의 재능으로 찬송을 불러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였고 또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축호전도를 하였는데 이때 이판일, 이판성 형제 그리고 일가족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두형제는 나중 장로와 집사로서 진리교회의 야긴과 보아스같은 든든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본 교회는 1935년 6월, 최초의 초가목조교회를 신축하고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임자도교회로 명명하여 이성봉 목사의 집례로 헌상식을 거행하였습니다. 1943년 12월, 본 교단의 사중복음 중 재림의 복음이 일본의 천황숭배사상과 배치된다 하여 일제의 강제 교단해산령에 의하여 교회가 폐쇄되었습니다. 1945년 8.15광복해방을 계기로 예배당을 되찾게되었으며 호남지방회소속관리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진리교회로 개칭하게 되었고 1946년 7월에는 진리교회 최초의 장로장립식을 통하여 이판일장로가 명실상부 평신도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본 교회는 1950년 6.25동란이 발발하여 공산좌익세력에 예배당을 다시 빼앗겼고 이판일 장로가정에서는 밀실기도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예배중 발각되어 이판일장로와 이판성집사 형제 그리고 노모(78세, 남구산, 경엽)와 자녀들, 3대 일가족 13인을 포함한 48인의 성도들이 총칼에 쓰러지고 손발이 묶여 바닷물에 던져지고 갯벌위에 내동댕이 쳐쳤으며 또한 죽창에 찔리고 백산모래구덩이에 생매장되어 장렬하게 순교한 교회입니다. 본 교회의 역사적 의의로는 교단에서는 두 번째, 초교파 교계적으로는 네 번째로 많은 다수의 순교자들을 배출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1950년 9.28 수도탈환수복 후 공산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임자도에 상륙한 국군들을 따라온 이판일장로의 장남 이인재는 부모형제들을 죽인 가해자들(좌익세력)에게 보복할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무조건 다 용서해줌으로써 임자도는 피의 보복이 크지 않은 평화의 땅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훗날 이인재는 목회자가 되어 본 교회 두 대에 걸쳐 교역자로 봉직사역 하면서 그들의 자녀 결혼주례까지 맡아주는 등 축복하는 목회를 함으로써 임자도에 나타난 십자가는 세워진 십자가가 되었고 이제는 꽃피운 십자가를 지향하면서 작은 실천목표를 다음과 같이 세웠습니다. 1. 산순교자 / 작은 예수 / 회개에 합당한 열매, 2 평생죽자 / 매일죽자 / 날마다죽자 / 오늘도 죽자 / 죽어야한다 / 나는 죽자/ 예수로 살자!, 3 내가진리교회 죽어서사는 교회 /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