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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6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민족대표 33인으로 만세 삼창. “3월 1일의 독립선언으로 조선인은 자주민이 되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박형순 (朴馨淳)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근곡 (槿谷). 위로 형과 누이가 있었는데, 1894년 경 서울로 이주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는 종로 누하동(樓下洞)에서 살았다. 5 세에 한학(漢學)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3세 에 현석운의 딸 현미리암과 결혼하였다. 양 사동소학교와 관립고등소학교 및 한성중학 교를 거쳐 한성외국어학교에 진학하여 영어 를 배웠고, 1911년 한성외국어학교가 폐쇄 되자 배재학당 대학부로 전학하였다. 이 때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그가 기독교계를 배경으로 사회활동을 시 작한 것은 장로·감리 연합의 기독교계 신문 핵심공적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 인으로 활동하였다. 1927 년 신간회 총무간사, 재만 동포옹호동맹 중앙상무집 행위원을 맡았으며, 동지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박동완(朴東完) 선생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신간회·재만동포 옹호 활동 1919년 3·1운동으로 옥고 치러 하와이에서 기독교 목사 복무 “살을 에이고 저미는듯하던 율렬(凓 烈)하던 겨울바 람도 이제는 부드럽고 온화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동칩(冬蟄)하였던 개구리 소리지르고 보금자리에  숨었던 종달새 노래 부르며 중천에 높이 떠 펄펄 나 른다. 아침 군생만물이 다 기뻐하는 희망의 때가 돌 아온다. 인생인들 슬픔에서 기쁨에, 고통에서 쾌락 에, 눌림에서 자유에 기쁜 때가 이르지 아니할까 보 냐.” - 자신이 주간으로 있던 『신생명』(제20호, 1925.2) 에 「권두어」로 실은 글에서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85년 12월 27일 경기도 양평 출생   ● 1919년 3월 1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참여 ● 1923년 7월 조선기독교창문사 발간      『신생명(新生命)』 주간  ● 1925년 3월 흥업구락부 참여 ● 1927년 2월 신간회 총무간사 ● 1927년 12월 재만동포옹호동맹 중앙상무집행위원 ● 1928년 9월 하와이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 초대  담임목사 이후 동지회 활동   ● 1934년 7월 『한인기독교보』 창간, 편집겸 발행인 ● 1938년 8월 28일 제28주년 국치기념대회에서  연설 ● 1941년 2월 23일 미국 하와이에서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