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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5년 10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하던 ‘관동군 (關東軍)’, 러 시아에 파견 되었던 ‘시베 리아파견대’, ‘북만주파견 대’ 등의 일 본군들이 서 북간도를 가 운데 두고 동 서남북 사방 에서 포위 공격해 들어 왔다. 일제의 이러한 공격에 독립군들은 일시적 으로 근거지를 이동하였다가 일본군들이 물 러간 뒤 돌아오는 계획을 짰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청산리전투(청산리독립전쟁)였 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안무(安武)의 국민회군 등이 먼 저 이동하였고, 북로군정서는 사관연성소의 졸업식과 잔무처리 때문이 조금 늦게 출발하 였다. 그밖에 광복단·신민단·의민단(義民團) 등과 서간도의 서로군정서도 움직였다. 이 들 독립군단들의 독립군들은 1920년 10월 20일경 이동 중 허룽현(和龍縣) 삼도구(三 道溝)의 청산리에 모이게 되었다. 추격 과 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군들은 청 산리 일대를 3면에서 포위하고 10월 21일 부터 독립군들을 향해 총공격을 가하였다. 일본군들의 공격에 독립군들도 연합부대 를 결성해 대응하면서 10여 일간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나중소는 북로군정서 교성대를 지휘 하여 적극적으로 전투에 나섰다. 백운평(白雲 坪)·완루구(完樓溝)·천수평(泉水坪)·어랑촌(漁 郞村)·천보산(天寶山)·쉬구·고동하(古洞河) 전 투 등이 청산리전투에서 이루어 진 주요 전 투들이다. 이주 한인들의 지원을 받은 독립 군들은 일본군 수백명을 살상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10월 21일 일본군 기병대 1개 부 대가 백운평으로 진입하자 미리 매복하고 있 다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여 적의 전위부대 를 전멸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청산리독립전쟁이 끝난 후 독립군들은 북 간도의 안투현(安圖縣)·옌지현(延吉縣) 등을 거쳐 북만주의 밀산(密山)까지 이동하였다. 그는 부하 2명과 평민 복장을 입고 변장해 밀 산으로 향한 길을 잡았다. 나머지 교성대원 들도 삼삼오오 나뉘어져 목적지인 밀산에 모 였다. 일시에 모인 독립군의 총 병력이 약 3 천 5백명에 달하였다. 이들 병력으로 ‘대한 독립군단’이라는 대규모 군단을 조직하였다. 서일을 군단을 지휘할 총재에 선임하고 소련 나중소가 신민부 검사원에 임명된 사실을 보도한 『독립신문』(1925) 신민부 조직 사실을 보도한 『매일신보』기사(192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