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page

50 2024년 5월 Special Theme    월간 『순국』 400호 기념특집 ‘순국선열유족회 『순국』 발간과 독립운동가들의 기록 편찬’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는 나고야(名古屋) 잡지사에 있던 한세복을 현지에 파견하여 조선인 피해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독립신문》은 당일인 1923년 9월 4일 관동대진재 호외를 처음 발행했다. 한세복 은 한인동포들의 피해를 김승학에게 보낸 현지 1차 조사서 첫 마디에서 ‘7천의 동포가 적지에서 피바다 를 이루었다’ 라고 하였다. 그는 각 지역별로 한인동 포의 피해 상황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상해로 보냈 다. 《독립신문》에 보도된 재일한국인 학살 상황은 한 국인에 의해 조사된 최초의 보고서였다. 재일사학자 강덕상도 《독립신문》의 피해 보고서가 가장 정확한 자료였다고 밝힌바 있다. 김승학은 독립신문사 부대사업으로 교과서편찬 위원회를 부설하고 교과서 편찬사업도 벌였다. 대표 적 출판물이 『배달족역사』다. 1923년 발간된 『배달 족역사』는 김교헌이 교열하고 임시정부가 발간한 국 사교과서로써 인성학교 등의 교재로도 쓰였다. 또한 삼일인쇄소를 통해 대종교의 교리 4책을 합한 『종경 (倧經)』을 발간하였고, 뒤이어 『신단민사(神檀民史)』, 『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 등의 출판물을 발간하였 다.] 김승학의 《독립신문》에 대한 집념은 광복 후까지 이어졌다. 상해에서 《독립신문》을 운영했던 경험을 토대로 백기준·김석황 등과 신문의 창간을 주도하 였다. 1946년 12월 27일 《(환국속간)독립신문》 창 간호가 발간되었다. 김승학은 주간(主幹)으로서 신 문의 운영을 총괄했고, 사장으로는 조성환·이시영· 조소앙 등이 취임하였다. 《(환국속간)독립신문》은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 세력을 지지·지원하는 역할 을 담당했다. 1949년 6월 26일 서거한 김구가 효창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사실을 맨 먼저 보도한 《독립신문》 호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