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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활동을 통한 독립운동 일본정부는 3.1운동의 열기를 자치운동으로 회유하기 위해 여운형을 초청했다. 이에 임시정부 쪽에서는 반대했으나, 몽양은 안창호, 쑨원, 미국 기자들과의 상의한 뒤 일본에 건너갔다. 그는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하여 일본 정부와 군부의 고위층을 만나 조석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의 독립의지는 그를 초청한 주무장관이었던 고가 척식장관이 크게 감탄할 정도였다. 그의 활약상은 일본 영자신문과 상해에서 발행되던 독립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고, 이를 통해 그의 활약상이 상해는 물론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몽양은 상해로 돌아가 독자적으로 외교활동을 줄기차게 벌였다. 그는 영어회화와 영어 연설이 능했다. 이 무렵 그는 임시정부 인사들과 함께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다.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그 때에는 자신과 임시정부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고 몽양은 훗날 일본 재판정에서 술회했다.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와주겠다는 나라는 사실상 소련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를 비롯한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공산주의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후 그가 실제로 활동한 일은 없었고, 단지 영어로 되어있는 3권의 공산당 관계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