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page


50page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사에 길이 빛날 구국 정신의 결정이다. 1907년 1월 29일, 애국 계몽 단체인 대구 광문회(회장 김광제)에서 서상돈 선생이 건의함으로써 첫 횃불이 올랐다. "일본 차관 1300만원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으니, 담배를 끊어서라도 국민의 힘 으로 국채를 갚아 국권과 국토를 보존하자"는 외침에 200여 회원들은 분발하여 즉각 전국적 으로 실행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2월 21일 북후정(北堠亭)에서 열린 「국채보상 대구 군민 대회」에는 수많은 시민이 다투어 참가했으며, 남일동에 사는 부인 일곱사람이 패물을 바침으로써 전국여성국채보상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이름 없는 걸인으로부터 고종 황제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으로 참여하는 구국 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이 비폭력 항일 정신은 뒷날 3.1운동과 물산 장려운동 등으로 이어져 우리의 소중한 정신 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