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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시 · 어록비 순례 -남강 이승훈 선생 5 애국 시 〮 어록비 순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 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16 세에 유기상(鍮器商)의 점원 이 되었다. 10여 년 동안 유 기행상, 공장 경영 등으로 많 은 재산을 모아 국내 굴지의 대실업가로 성장하였다. 하지 만 1904년 투자 실패로 파산 했다. 1907년 안창호의 교육 진흥론 연설에 감동을 받아, 술·담배를 끊고 강명의숙을 열었다. 이어 신민회 발기에 참여하 였고, 오산학교를 세웠으며, 1910년 평양에 마산자기회사를 세 웠다. 1911년 ‘안악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그 해 9월 ‘105인 사건’으로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4년 2개월의 옥고를 치 렀다. 1919년 3·1운동 준비 때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기독교 계 통의 참여를 위해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하였고, 이로 인해 징 역 3년형을 받았다. 1922년 가출옥하여 1924년 『동아일보』 사 장에 취임하여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하였다. 1930년 6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기독교 지도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남강 이승훈 선생 사진 〮 목련 풍경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1864년 3월 25일~1930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