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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1월30일 일요일 5 (제227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행산공파대종회(회장 수경) 는 지난 21일(음10.2)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소재행산재후원에모셔진단소 에서밀성부원군충정공행산(휘世均)선 생을 비롯한 아드님 도은공(挑隱公,휘 文 彬)과 소감공(少監公, 휘 文翊) 삼부자 추 향을봉행했다. 이날제향은전일입재하여몸을단정히 하고 이른 새벽 개좌를 통해 내외집사를 정한 후 천권 교부에 이어 박수경 회장이 제례에 임하는 제관에게 엄숙하게 봉행하 여달라는당부의인사말을시작으로광욱 집례관의창홀에따라각단소에서정해진 제관이 소임을 다 한 가운데 제관은 다음 과같다.(초헌/아헌/종헌/축관순) △행산공 성환/철환/동수/일환 △도은 공-번/배흠/진석/정흠 △소감공-영식/문 수/율대/진하. 행산공 단소에 초헌관으로 헌작한 박성 환현종은조선태종조에문과에급제하여 청송부사를 지내고 절의가 고상하여 스스 로고향송악에은거하며경서를탐구하며 여생을 보낸 휘 시예(時乂, 호 돈와 遯窩) 공의 후예로 부산 대동병원 병원장 겸 이 사장 및 대동대학교 이사장으로 의학계와 의료인양성에매진하고있다.마취통증의 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40여 년간 현장 진 료 경험이 있으며, 낮에는 중환자실에서, 야간엔정기당직도소화할정도로왕성하 게 활동해 오고 있다.특히 ‘아름다운가게’ 부산본부의 공동대표로서 자선 및 사회공 헌 활동에도 참여해 종중의 위상 또한 드 높이고있다. 대동병원은 전통과 역사를 가진 병원으 로,설립자 박영섭 박사의 설립 정신(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의료 혜택 제공)을 이어 가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포스트코로나시대를대비해심혈관 질환자와 응급환자를 위한 인력 및 장비 보강계획을발표하는등병원의응급의료 역량강화에주력하고있으며해외의료봉 사, 의료관광 유치 등 글로벌 의료 활동도 적극추진하고있다. 제향 후 가진 정기총회는 감사·결산보 고에 이어 지난 춘향 봉성금 접수내역 등 을상세하게보고했다.의결사상으로는밀 성재 앞에 세워진 동고·만와 양선생 기적 비 보수의 건을 상정하고 그 이유로 2019 년건립당시기초를튼튼히했어야하는데 이를부실하게하여비석이기울어져행인 들로하여금행산재의위상이추락하고있 어대종회경비로정비코저한다. 이에 일부 종원들은 밀성재에서 세웠으 니 밀성재에서 보수를 하여야 한 것 아니 냐고반문,돌희총무는처음세울때밀성 재는부지만제공하고이외모든제반사항 은행산재에서맡기로하고세웠다고밝혀 예산을 편성 보수키로 하고, 행산재 대문 밖 세워진 비석 중 일부 종원의 일탈로 부 서진비석의교체여부는집행부에위임키 로했다. 행산공의휘는세균(世均,밀성대군의1 4세(世)이고 태사공의 7세(世)이다. 1340 년경에고려충혜왕때양효공(良孝公)간 (幹)의 차차(次子)로서 은산부원군 휘 영 균의동생으로태어났 다.벼슬이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이며 전문형(典文衡)과 중 국 元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 냈다. 노년에 원나라에서 귀국할 때 원나 라 문관 구양현이 이별을 슬퍼하며 지은 시(詩) “송고려 박학사”는 지금도 전해지 고있다.귀국하여벼슬이평장사(平章事) 에 이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 하고 시호(諡號)를 충정(忠靖)이라 별세 후에 받았다. 또한 수연(壽宴)을 맞으니 임금께서 기로치사(耆老致仕)와 함께 선 (膳:궁중요리)과 악서(樂書)와 광효(廣 孝)라는 두 글자를 내리시어 고향에서도 임금의극진한대우속에만년(晩年)을보 내셨다. 슬하에 도은공(挑隱公) 휘 문빈(文彬), 소감공(少監公) 휘 문익(文翊) 형제를 두 었는데 도은공의 아들 4형제 신열(臣悅), 신경(臣敬), 신보(臣輔), 신총(臣寵))과 소감공의 아들 형제 신좌(臣佐), 신필(臣 弼)등 이들 종형제 6인을 파조로 하여 지 금에이른다. 밀성박씨행산재추향및정기총회성 료 행산공3부자추향이지난21일봉행된가운데참례한제관이함께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대종회장수경,직일수옥,성환,철 환,동수,일환,번, 배 흠,진석,정흠,영식,문수,율대,진하,집례광욱,찬창돌희 순 행산공3부자학덕과충절기려 박수경 대종회장이 박성환 초헌관에게 천권을 교부하고있다. 천권을 교부받은 제관은 즉석에서 펴 확인한 다.(사진집례박광욱) 충주박씨 강릉공 후손들은 11월 9 일(일)충북 영동군 용산면금곡리독 봉에 위치한 송은재(松隱齋) 재실에 서현판식을거행하였다. 송은재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 신 휘 유진(諱 惟晋, 1610~1693, 82세 卒)公께서 이곳에 터를 잡고 세거지 를 이룬 후,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해 온유서깊은곳이다. 그동안은 별도의 현판 없이 유진 선조님 이하후손들의제향을올리는 재실로 사용되어 왔으나, 이번에 유 진 선조님의 10대 후손인 박도근, 11 대 후손인 박용규 종원 외 이곳에 거 주하는 송은공후손들이주관하여현 판을 제작하고제막식까지 모든준비 를 마쳐,강릉공 종중의 원로 및 임원 들을 모신 가운데 뜻깊은 현판식을 갖게되었다. 고증에따르면,송은재가위치한지 역은예로부터‘재실골’이라불려왔으 며, 이는 송은공의 묘소 아래쪽 지명 에서유래된것으로과거선조의후손 들이 재실을 건립하여 재실이 있었으 나세월과전란으로소실되어,현재의 건물은 196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 다. 이후 오랜 기간 현판 없이 제사를 봉행해오던중,이번현판식으로비로 소재실의이름이정식으로걸리게되 었다. 이날행사에앞서강릉공종중우숙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날처럼 숭 조(崇祖)정신이 희박한 시대에 도근, 용규종원외송은선조님의후손들이 매년시제를정성껏봉행하고종원간 의돈목을도모하기위해헌신하는모 습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감” 이라고격려의말을전했다. 또한 우숙 회장은 “우리 종원 모두 가 선조님의 숭조정신을 이어받아 조 상님을 더욱 공경하고, 종원 간의 화 목과 단결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더욱 발전해나가야할것이다”며,“이번송 은재 현판식이 종중의 정체성과 자긍 심을더욱굳건히하는계기가되기를 바란다”고당부하였다. 이번 송은재 현판식은 선조의 뜻을 기리고후손간의유대를돈독히하는 자리로,참석한모든종원들에게숭조 정신(崇祖精神)을 다시금 일깨우는 뜻깊은행사가되었다. 한편 송은재 재호는 휘 유진 공의 아호 송은(松隱)을 취했다.공은 강릉 공의 5대손으로 사복시판관을 지낸 휘 사친(事親)의 아들 삼형제중 삼남 으로 가학(家學)을 이었으며 동지중 추부사에올랐다. 충주박씨송은재(松隱齋)편액게액(揭 額) 종중의정체성과자긍심을더욱굳건히하는계기가되어 몽고군의 간담 을 싸늘하게 하면 서 전쟁사에 큰 족 적을 남긴 음성백 박서장군을 비롯 한 아들 재(梓, 공 부상서),손자현계 (玄桂, 평해부사) 공(公) 등 3대 3위 의 추향이 지난 19 일 관향지인 음성 읍 삼생리 선영에 서 이날 제향은 갑 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도 아랑곳 않고 전 국 경향각지에서 후손들이 참례하면서 뜨 거운 열기 속에 대종회 용범 회장 주관아 래 평현 전 문익공파 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은기 현종이 축관으로 독축하였 으며,이어용업전충민공파총무,권호고 성박씨총무순으로각각헌작으로봉행되 었다. 이날초헌관으로헌작한평현현종과아 헌관용업현종은대종회와소파각급직책 을 맡아 묵묵히 봉사 해오면서 종원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그리고 아헌관으로 헌작 한 권호 현종은 고성박씨 총무를 맡아 멀 리경남고성에서참례했다. 관조 박서장군 제향에 이어 아들 재(梓, 공부상서), 손자 현계(玄桂, 평해부사) 공 (公)의 제향의 초헌관은 정승공파종친회 희진 회장, 아헌관 용관(문익공 후), 종헌 관범근(충민공후)현종이그리고축관에 는 관조 제향에 축관을 맡았던 은기 현종 이각각소임을다했다. 음성박씨는 귀주성 전투의 영웅 박서장 군을 관향조로 하고 있다. 1231년(고종18 년) 몽고의 침입에서 천하무적 몽고 기병 의 명예를 여 지없이 깨뜨 린바 있어 근 세에 이르러 서도 전쟁영 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 러나 당시 왕 명을 어길 수 없는 신하의 도리를 지켜 순응하고 성 을 열어 항복 하고는 분연 히벼슬을버리고음성으로낙향하였다. 그럼에도 귀주성을 굳게 지켜 몽고군을 격퇴한 철혈용장(鐵血勇壯) 박서 장군은 문하시랑평장사에 제수되고 충정공(忠靖 公)의 시호와 함께 음성백(陰城伯)에 봉 해졌으며, 충절(忠節)과 무공을 기리고자 조선 숙종30년(1704) 예조판서 민진후(閔 鎭厚)의주청(奏請)으 로평안북도귀주에 정공사가 세워졌고 이듬해 사액(賜額)되 었다. 또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의 용강서 원에배향되었다. 아들재(梓)는고려때공부상서를역임 하였다.손자현계(玄桂)는고려충숙왕때 전리총랑(典理摠郞), 평해부사(平海府 使) 등을 역임하였고, 1327년(충숙왕14) 정승(政丞) 윤석(尹碩)과 함께 조적의 난 을평정한공으로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 며,아들 문서(文瑞),문길(文吉),문환(文 桓) 등 3형제를 두어 이때부터 가문이 크 게번성하여관향지인음성을비롯하여광 주전남일원과경기화성,의왕,강원원주 등에큰집성촌을이루고있다. 한편 이날 제향 전 용범 대종회장은 인 사말을통해쌀쌀한날씨에도불구하고이 렇듯 많이 참석하여 주시어 감사드린다고 말하고제관분정을발표한후정성을다해 주실것을당부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음성박씨관조박서장군추향봉행 쌀쌀한날씨에도추원보본의정성다해 음성박씨대종회는지난 19일관조박서장군의시향을봉행하고참례한 제관이 기념촬영을하였다. 박용범 대종회장이 인 사말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이날 다소쌀쌀 한 날씨를걱정하며종 원들을독려했다. 박평현 초헌관이 첫잔을 올 리고있다. 전남 광양과 순천에서 아침 동이트 기 무섭게 천리 길을 달려 선영에 참 배하고 종친들을 반갑게 만나 조우하 는 모습에 양가의 특별한 관계를 알 수 있다. 판서공 후 운곡공은 1496년 경기도남양에서태어나관례전사마 시에 합격하여 족대부 도원재(휘 세 희)공 문하에서 경전을 강토하며 심 신과 언행이 바르고 총명하여 스승의 신망과총애를받아왔다.그러나스승 이자 족대부인 도원재 선생께서 승정 원좌승지 재임 중 기묘사화(己卯士 禍)에 연루되어 강계(江界)로 유배되 었다가배소에서생을마쳤다.이에운 곡공은 스승의 시신을 수습하여 남양 에안장하고가족들을데리고전남순 천으로 이거하면서 오늘날 지역의 토 성으로성장했다. 그리고 후손들은 매년 음력 9월 15 일이면 남양으로 달려가 방계선조 제 향에 참석 예를 다한다. 이날 향사는 도원재공과 조부 휘 미창(美昌),아버 지(휘사화)백형송촌공(휘세훈),아 우 인재공(휘 세후) 이하 5代의 제향 을각기제물을진설하고동열현종의 집례로 먼저 승지공(휘 미창) 제향에 는 성열 종손,종철,종남 현종이 각각 잔을올리고명손축관의독축으로진 행되었다. 이어 송촌공은 기호, 래향, 대석래학,도원재공태근,봉두,홍두, 상섭 인재공은 홍빈, 철수, 성로. 정용 현종이 초헌 아헌 종헌 축관을 각각 맡았다. 남양문중은 세종조(世宗朝)에 군 자감부정(軍資監副正)을 지낸 휘 사 화(士華)공이 비조이다. 권람의 사위 이기도 한 부정공은 의영고 직장, 공 조정랑, 안산군수, 풍덕군수, 평산부 사 등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애민정신으로 가득했다. 자헌대부 이조참판,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수에 증직되어 후손들은 판서공파라 하고 한편으로는 세거지 남양을 따 남양파 라고도한다.아들4형제중첫째인세 훈(世勳)의 호는 송촌(松村)으로 중 종(中宗)때현량과(賢良科)에천거되 었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리 남 양(南陽)으로 돌아가 후진양성에 진 력하였으며,기묘사화후복관되어통 훈대부 제용감 첨정이고, 인종 때 통 정대부 이조참의로 증직되었다. 8살 에 서울에서 살고 있는 주자동의 효자 로 일찍 소문나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행실이 전해진다. 국조인물지에 기록 되고기묘삭관전관직은상주판관으 로상주읍지에나타난다.중씨문간공 (휘 세후)와 함께 남양의 안곡서원에 배향되었으며 후손들은 公의 호를 따 송촌파(松村派)라한다. 판서공(남양파,휘 사화)의 차남 휘 세도(世燾)는 무과에 올라 습독(習 讀)을 지내 습독공파라 한다. 습독공 의아들휘충정(忠貞)은장사랑,손자 휘 치서(致瑞)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 련원첨정을지냈다. 판서공의 삼남 휘 세희(世熹)의 號 는 도원재(道源齋), 1510년(庚午)에 진사시1등5인에합격하고1514년(甲 戌)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 문관 전한으로 호당(湖堂)에 뽑혔고, 홍문관 수찬, 교리, 이조좌랑, 충청도 도사, 사헌부지평·직강·헌납, 병조정 랑·검상·사인·응교·지제교·사간, 성 균관 사성·전학, 승정원좌승지 재임 중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강계(江界)로 유배되었다가 배소에 서생을마쳤다.인조조에복권되고가 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겸 동지경연춘 추관, 성균관사, 홍문관 대제학에 증 직되었다. 현종 무신년(1668)에 청원 건의에 의하여 기묘명현으로 학문 명 절이특별한10인에들어자헌대부이 조판서 겸 지경연춘추관 성균관사 홍 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오위도총 부도총관 좌빈객으로 추증되고 시호 문강(文剛)이 내려졌다. 백씨 송촌공 과같이안곡서원에배향되었고,운곡 공, 남포공과 함께 전남 순천의 이천 사에배향되었다. 판서공의 사남 휘 세후(世煦)의 호 는인재(認齋),정암(靜庵)조광조(趙 光祖)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고 중 종(中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 다. 1527년 홍문관 박사,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등을 거쳐 1528년(중종2 8) 광양현감으로 부임하여 학문을 장 려하고 사마소(司馬所)를 설치하여 유학의 진흥에 진력하였으며 성 밖에 유당공원(柳塘公園)을 조성하여 주 민들에게 안락한 휴식과 사유의 공간 을제공하고,왜적과해풍의피해로부 터마을을보호하기위하여숲거리에 수림을조상하는등선정을베푸신청 백리(淸白吏)로 훗날까지 향민들의 칭송이자자하였다. 1540년 밀양부사에 부임하여서는 영남루와 동쪽 전각인 능파각을 중수 하는데치적을세웠으며,이후동부승 지가 되어 이듬해 하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56세에 강원도 감찰사 및 병마수군절도사가 되어 관동지방에 선정을 베풀었고, 사후에 대광보국숭 록대부의정부좌의정낙성부원군(洛 城府院君)으로 추증되었으며, 광양 봉양사에신재최산두선생과함께배 향되었다.후손들은 공(公)의 호를 따 인재공파(認齋公派)라한다. 한편 남양문중의 박종송 회장은 멀 리 광양 순천에서 찾아준 일가분들에 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지금 우리 문 중의제향에는다소두서가없는것같 은데 내년 시향부터는 전통 예법을 살 리고후손들에게배움이될수있는제 례를정착하겠다며협조를당부했다. 상주(상산)박씨상암공후남양문중시향 봉행 상주박씨상암공파화성남양종중과 판서공파전남순천광양종원들이 제향후우의를다지며안곡서원을배경으로 기념촬영을하 고있다. 방계후손대거참여우의다져 박성열종손이 헌작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