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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4월30일 화요일 5 (제208호) 관향조 종친회 원덕사 외삼문이 무너진 지 2년만인 지 난 3월 중순 일부문중에서 분담금을 납부 하고밀성재에서후원금을전달하는등가 까스로자부담을마련하여공사에착공현 재 작업 중이다. 그런데 원덕사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원 덕사 외삼문은 2011년 무너져 2012년 중수 하였고,이후4년만인2016년 말 또 내려앉 았다.그리고 2019년 3월 20일 준공된 외삼 문은지난해또무너졌다. 4년도 버티지 못하는 외삼문 공사는 분 명 문제가 있었다. 이번 현장을 찾은 종원 들은허술한공사에아연실색한다.서까래 는해충이파고들어왔고들보는썩어있었 다. 이는 처음부터 부자재 선택을 잘못하 였는데도 반복되듯 이번 공사에도 서까래 를 깎아 놓고 비와 이슬에 그대로 노출된 채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과연 이번 공사는 얼마나갈까의구심을감출수없다. 2019년 공사금액은3천만원(자부담50 %)이었고, 이번 공사는 4천7백만원(자부 담 50%)이다. 그럼에도 허술한 공사는 분 명 문제가 있다. 공사금액으로만 보면 사 당을지을수있는금액임에도삼문공사에 이처럼 많은 공사비를 투입하는데 고작 4 년을 버티지 못하고 있어 이번 공사에는 철저한감독이필요하다고지적하고있다. 그리고 지난 8일 원덕사종회 정기총회 에서는삼문공사가집중거론된가운데석 태 회장은 어려운 가운데 성원해준 종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삼문공 사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자부담을 마련하는데성원을촉구했다. 지난해취임한박석태회장은80고령임 에도 주변정화작업을 몸소 하고 있고, 이 번 제사상 교체비용(90만원 상당)과 원덕 사 운영비 300만원을 헌성하는 등 홀로 고 군분투하고있어안타까울뿐이다. 한편 9일 오전 11시 봉행된 제향에는 영 덕집례관(영동정공后)의창홀에따라좌 복야공파대종회 범식 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재윤총무이사독축에이어행산 공후수옥현종,군수공종중의수영전예 천축협장이아헌과종헌으로헌작했다. 원덕사는충북옥천군이원면용방리중 구봉 아래에 있다.1922년(壬戌)봄에 승지 공(朴仁齡 :충헌공 휘 陟의 후손)의 묘 아 래에 후손 박만구(朴滿九)가 멀고 가까운 성손과같이사우(祠宇)를지을것을상의 하고같은해동짓날에밀성대군의위패를 봉안하였으며 1923년(癸亥)6월5일 에 8도 의후손들이대군의후예인19중조를배향 했다.49년후인1972년(壬子)11월7일에1 위를 추배하고(판서 초암공 휘 麟祐)또 1 2년 후인 1984년(甲子)11월 동지 일에 1위 를추배(정랑공휘粹)하여원덕사라편액 을 걸었으며 매년 음력 3월1일 합제를 지 내고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성박씨원덕사대종회시향봉행 외삼문공사착공븣2012년중수후4년을버티지못하고두번째무너져,철저한공사 관리감독필요 원덕사춘향이지난9일봉행된가운제관과참례한종원들이함께하고있다.(사진관복입은제관왼쪽부터 범식,수옥,수영,영덕,재윤순) 원덕사삼문중수공사석태대종회장과권곤, 영덕 현종이들러보고있다. 지금은 간척 으로 사라진 해남 연구포를 중심으로 노하 리와 연구리에 분포되어 있는 덕동(연구)문 중의 후손들이 지난 8일 관광 버스 3대를 동 원 경주의 오릉과 숭덕전을 참배하고 부곡온천에 들러 온천욕과 함께 지친 심신을 달래고 다음날인 9일 전남 무 안에서 봉행된 관조 무안군(휘 진승) 의 제향에 참례하는 선조유적탐방 행 사를가졌다. 해남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경주 에서기다린본보상섭국장의안내로 먼저오릉을참배하고오릉에관한역 사와 현재, 그리고 일자제각에 대해 자세한설명을듣고숭덕전을찾아참 배했다. 오릉의 일자제각은 2004년 준공된 제각으로 조선왕조의 릉앞 제각이 정 (丁)자 제각인 반면 오릉은 일(一)자 제각이다.이는조선은중국의제후국 이라 하여 일자제각은 중국 황제릉에 만 건립되고 조선은 정자제각만 허용 했다.그리고신라는중국과관련없는 독립국이지만 문화관광부에서는 정 자(丁字) 제각을 권장하였으나 당시 숭덕전의 원로 참봉님들은 이를 받아 들이지않고 투쟁끝에 일자(一字)제 각을지은것이다. 덕동문중 박근만 문임은 이날 행사 를 추진하면서 종원들에게 일자제각 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우리 모두는 신라 시조왕의 후예로 자부심을 가져 야 할 것’이라며 유적탐방의 의미를 더하고다음날무안경기묘향사를통 해우리의근본을명확히하여자녀들 에게들려주었으면한다고말했다. 덕동문중은 통덕랑 박영길(朴永 吉)공이 해남읍 금강골 해촌에서 150 0년대 후반에 이거하였으니 440여 년 전이다.공의자(字)경후(慶後),호는 직양재(直養齋)이고 통덕랑(通德郞) 이다.부인 언양김씨와의 사이에 3남1 녀를 두었고, 두 번째 부인은 선산김 씨인데이역시3남1녀를두어6남2녀 이다.그러나다섯째와여섯째인연호 (淵孝), 개생( 곗 生)은 알려지지 않고 민효(閔孝)·주효(周孝)·상효(祥孝)· 래효(萊孝)의 후손들은 연구리에서 가까운 지동, 추당, 신당, 덕인, 원항, 산이면용반등으로이주해살면서덕 동의 재사(齋舍) 래격당(來格堂)을 중심으로 추원보본하며 후손들 간 돈 독한 정의(情義)를 나누고 있어 지역 에서 토반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는찬사가이어진다. 특히 박근만 문임은 해남파 청년회 장을맡고있으면서종중어른들의든 든한 조력자가 되어 어른들을 섬기고 있어신임이두텁다. 무안박씨해남파덕동문중경주지역유적탐 방 덕동문중종원들이지난8일경주오릉을찾아참배하고기념촬영을하고있다. 오릉·숭덕전·경기묘등븣부곡온천에서여장풀며힐링 박근만문임 광양현감으로 선정을 베풀었던 인 재박세후선생과신재최산두선생을 배향하고있는전남광양의봉양사석 채례(釋菜禮)가 2월 중정(中丁)일인 3월 24일 영정이 봉안된 봉양사에서 지역 유림주관으로 봉행된 가운데 이 날 제향은 정상인(鄭相仁) 집례의 창 홀에 따라 최영오(崔英五) 봉양사 원 장, 최병춘(崔炳春) 초계최씨대종회 장, 박종송(朴鍾淞) 前 상주(상산)박 씨대종회장순으로 헌작하고 김형택 (金衡宥 ) 성균관 전인의 독축으로 진 행되었다. 인재공은 군자감정을 지낸 사벌국 왕의 16세 휘 사화(士華)와 영월신씨 의셋째아들로,그의장형휘세훈(世 勳)은 도학자로 남양 안곡서원에 배 향되었고, 중형인 도원재 세희(道源 齋 世熹)는 별시문과 장원급제한 후 승정원 좌승지, 사헌부 대사헌, 홍문 관 대제학을 지낸 기묘명현으로 남양 안곡서원과 순천 이천서원에 배향된 명문가 출신으로 1493년 경기도 남양 에서태어났다. 1516년 진사, 1519년(26세)에 문과 급제하였으나그해기묘사화때중형 도원재공과 함께 조광조 문인인 사림 파 숙청대상이 되어 기묘명현이 되었 다. 1527년 홍문관 박사,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등을 거쳐 1528년(중종2 8) 광양현감으로 부임하여 학문을 장 려하고 사마소(司馬所)를 설치하여 유학의진흥에진력하였으며,성밖에 유당공원(柳塘公園)을 조성하여 주 민들에게 안락한 휴식과 사유의 공간 을제공하고,왜적과해풍의피해로부 터마을을보호하기위하여숲거리에 수림을조상하는등선정을베푸신청 백리(淸白吏)로 훗날까지 향민들의 칭송이자자하였다. 1540년 밀양부사에 부임하여서는 영남루와 동쪽 전각인 능파각을 중수 하는데치적을세웠으며,이후동부승 지가 되어 이듬해 하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56세에 강원도 감찰사 및 병마수군절도사가 되어 관동지방에 선정을 베풀었고, 사후에 대광보국숭 록대부의정부좌의정낙성부원군(洛 城府院君)으로 추증되었으며, 광양 봉양사에신재최산두선생과함께배 향되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상주박씨 판서 공파광기회장을비롯한임원진이대 거 참석 선조의 얼을 기렸으며, 제향 이 봉행된 봉양사는 1578년 신재공과 인재공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享 祀)를 받들어 왔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77년 에 중건하여 매년 2월 중정에 제례를 봉행하고있다. 註:석채라함은고대에처음으로학교에들 어갈때선사(先師)에게예물로채소류를바치 던 일을 말한다. 석채(釋菜)는 석채(舍采)라고 도한다.고대에학교에학생이입학하였을때 에평번의등속으로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제전을드리는것을석채(舍采)라고하였다.석 (舍)과 석(釋)은 음과 뜻이 같다. 석은 놓다(舍) 또는두다(置)의뜻을지닌글자(집븮사븯자로찾 는것이빠르다.)로서베풀다또는차려놓다라 는뜻이다.주례(周禮)대서(大胥)에뷺봄에학교 에들어갈때에석채를행하고음악에맞추어 춤춘다(春入學,舍采,合舞)뷻라고하였다.석채 는음력2월과8월의상정일,그달의첫째정일 (丁日)에 올리는 대규모 제사로, 석전. 석전대 제.석채라고도한다.석채는학생들이입학하 여마름따위를제수로사용하여제사를지냈 기때문에붙은이름이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 t) 전남광양봉양사인재박세후선생제향봉 행 광양현감으로선정베풀어후세의귀감되어븣신재최산두선생과함께봉안 상주박씨후손들이봉양사석채례에종헌관으로헌작한종송현종과함께하고있다. 삼현학사(三賢學士) 댁(宅)이라 불러 지는행산공춘향이지난18일오전8시밀 양시부북면송학마을행산재후원의단소 에서봉행되었다. 이날재향은전일입재하여박수경현종 을 직일(直日)로 추대하여 제집사를 선정 하는 개좌에 이어 당일 아침 제관에게 천 권을배부하며시작되었다.권필대종회장 은 천권 전달 후 조상의 대은(大恩)을 잊 지 않았으면 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제례에 임해달라는 짤막한 당부의 말을 전하고, 병승 전 아달라왕릉 참봉의 집례로 충정공(忠情公) 행산(杏 山) 선생, 문절공(文節公) 도은(挑隱) 선 생, 소감공(少監公) 등 삼부자 제단의 각 헌관이단소에각각들어서차례대로정성 스럽게제향을봉행했다. 이날 제례의 제관은 △행산공-병흠(秉 欽), 무흠(武欽), 정호(整浩), 진하(鎭夏) △도은공-수근(秀根), 상희(相熙), 해익 (海翼), 정현(正鉉) △소감공 병찬(炳燦), 연희(連熙),성용(成鎔),진석(鎭錫)이상 (초·아·종·축관順) 행산재를들어서면먼저‘광효(廣孝)’라 는 큰 글자가 들어온다. 이는 행산공의 아 들 도은공이 부친을 위하여 수연(壽宴)을 베풀 때 고려왕으로부터 하사 한 찬궤(饌 饋,식사를 권함)와 광효규모(廣孝規模) 4 자를사액(賜額)받은것으로집안의내역 을 알아 볼 수 있다.평소의 바름이 효에서 비롯된것으로풀이할수있을것이다. 행산공은 서기 1340년경에 고려 충혜왕 때 양효공(良孝公) 간(幹)의 차차(次子) 로서은산부원군휘영균의제(弟)로태어 났고,휘(諱)는세균(世均)이다. 벼슬이 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이며 전 문형(典文衡)과 중국 元나라에서 한림학 사(翰林學士)를 지내셨다. 늙어 원나라에 서 귀국할 때 원나라 문관 구양현이 이별 을슬퍼하며지은시(詩)“송고려박학사” 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 다.귀국하여벼슬이평 장사(平章事)에 이르 고, 밀성부원군(密城 府院君)에봉하고시호 (諡號)를 충정(忠靖) 이라별세후에받았다. 또한 수연(壽宴)을 맞 으니 임금께서 기로치 사(耆老致仕)와 함께 선(膳:궁중요리)과 악 서(樂書)와 광효(廣孝)라는 두 글자를 내 리시어고향에서도임금의극진한대우속 에만년(晩年)을보내셨다. 슬하에 장자이신 휘 문빈(文彬)이시니 도은공(挑隱公)이시며 차자 소감공(少監 公)은휘문익(文翊)이시다. 문절공(文節公) 도은(挑隱) 선생의 휘 (諱)는 문빈(文彬) 호(號) 도은(挑隱) 이 시며 중서전(中書典) 문형(文衡)이 벼슬 이다. 고려가 운이 다하자 고향으로 돌아 와망복지절을고수했다.이조에서대사성 으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98세로 졸 하니 좌찬성 의금부 세자좌빈객을 증하여 문절(文節)이라사시(별세후시호(詩號) 를받음)했다. 소감공(少監公)은 도은(挑隱) 先生의 아우이시다.휘(諱)는문익(文翊)이다.고 려시대의 소감의 벼슬은 무관직으로 기병 과 보병을 합친 군대를 인솔하여 전라도 전주지방에주둔한것으로추정된다.형인 도은공과 더불어 망복지의를 지켜 이조에 는 벼슬을 하지 않고 충절을 다 하였다.목 은 선생의 시문에 행산先生, 도은공(挑隱 公) 소감공(少監公) 삼부자를 삼현이라 하였으니,또한벼슬을하였더라도상당한 학문의깊은곳에있었으리라짐작된다. 행산재는 1955년 창건되어 수차례 보수 를 거쳐 2011년 중건되었다. 그러나 중건 된 이후 도색을 하지 않아 해충방지에 취 약점을 드러내 지난 달 부터 본재와 동재, 대문 옻칠 도색을 시공 중이다. 옻칠은 일 반도료와달리고가이지만목조건물의취 약점인해충과습기(濕氣)등에강해한번 도색으로 상당기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번 도색비용 1억3천여만원은 권필 대 종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면서 이루어졌으 며,이에대해권필회장은돈은가지면더 갖고 싶으나 이제 남은 여생 조상을 위하 고 종중을 위하는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말한다. 밀성박씨‘행산재’춘향봉행 행산재춘향봉행후제관들이기념촬영을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박수경,병흠,무흠,정호,진하,병승,경호,수근,상희,해익,정현,권필대 종회장,돌희창찬(唱贊), 병찬,연희,성용,진석순(順) 행산재옻칠도색및부분정비븣1억3천여만원박권필회장특성,선조를위해봉사할 수있어다행 박권필회장이헌관에게천권을전달하며엄숙하고 질서정연하게제향에임해달라고당부한다. 천권(薦券),천거된제관에게발급하는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