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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그 명분에 의거하여 거취를 정하노니 명분이란 의리의 실천이다. 유가사상에 있어서는 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매우 중시하며 사회의 조화와 화합은 곧 개개인이 발휘하는 역할의 총체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동양국가에 있어서 개인과 사회는 불가분의 유기적 관련을 가진다. 명분과 지위 그리고 사회 조직은 유교사회에 있어서 그 문화의 골간을 이룬다. 군신부자남녀장유 등의 차이에 따른 역할은 각각 다르고 신분과 지위에 맞는 역할 수행은 개인의 행위와 가치 선악을 판단하는 사회적 평가기준이 된다. 여기 김공 희봉은 명분의 삶을 산 선비였으니 자는 찬문이요 간취는 호이다. 서흥김씨이니 고려조찬성사 휘 천녹께서 서흥군으로 피봉되어 얻어진 관향이다. 그 아드님 세구는 판도판서요 그 아드님 봉환은 군기감사이시다. 공민왕께서 남순하실 때 복주자사로 임명되었더니 복주를 안동대도호부로 승격시키면서 공을 도호부안 집사로 삼았다. 관면이 이어진 중에 조선조에 들어와서 중곤께서 태조때 반제하여 세종까지 4조를 섬기면서 다섯 고을 수령과 두 도 감사를 역임하고 또 사헌부에 두 번 사간원에 네 번 들어가 명성을 떨쳤다. 벼슬이 통정대부예조참의에 올랐다. 참의공이 현풍에 시거하셨고 그 증손이 한훤당 김선생이시다. 시호는 문경이요 공의 15대조이시다. 문경공 둘째아들은 언상이신데 비안군위 두 고을을 역임하신 후 포산에서 창녕에 옮겨살게 되었다. 그 아드님 립은